한국의 미>
한국건축 구조를 공부하는 분들께 많은 참고가 될줄 믿습니다.
>>>한국 문화의 불가사의2-목조건축
주거 문명의 산물인 건축은 어떻게 진화 발전되었을까?
원시 인류 들은 수렵채취 시기에는 자연 동굴이나 나무 등에서 임시 주거를 시작 했을 것이고, 농경 사회로의 진입에 다른 정착 생활이 시작되면서 약간의 땅을 파고 기둥을 세우고 그리고 덮개를 씌우는, 지금 우리가 竪穴式(수혈식)이라 부르는 움막에서 생활이 시작 되었을 것이다. 이 무렵에는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고 점차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울타리란 것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풍요로워지자 더욱 세련되고 우아한 형태가 되었을 것이고, 각자의 편리성과 지역적인 차이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웅장한 神殿이나 寺刹의 건물들이 되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석조 건축물이 대세를 이루는데, 유독 한국 일본 중국 동양 3국만이 木造 건축물이 발전했다. 서양도 훌륭한 목재가 많이 있었을 터이고, 동양 또한 石材의 채취가 가능하였을 것인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아마 가공의 편리성, 경제적 능력 또는 사상적 배경도 한몫 하였으리라.
시간적 공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석조나 목조의 공통점이 있다면 , 그것은 錯視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기둥에 배흘림 ( Entasis 또는 收紛 )기법을 적용한 점이 그렇다. 그러나 반드시 착시 현상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한국의 건축은 각각 가로 보(Beam)를 적용하기 때문에 역학적으로 훨씬 안정적이다.
현존하는 最古의 목조 건축은 안동 봉정사 극락전으로 확인된 1972년 전 까지는13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 건축을 발견한 것은 부끄럽게도 일본인 "세끼노다다시"(關野 貞) 이다. 그가 1933년에 조선사 학회서 이 건물은 고려시대의 건축이며 일본 최고이자 세계 最古인 호류지 (法隆寺 8세기 초) 와 비교 하면서 알려진 것이라 한다.
현재 국보로 지정된 총 14개의 목조 건축물 가운데, 서울 남대문, 강릉 객사문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佛事 건축물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현존하는 금산사 미륵전, 법주사 팔상전, 및 화엄사 각황전은 임진왜란 이후의 것이나 초기작은 시기적으로는 고려 시대이다.
반면에 우리에게 문화를 배워 갔던 일본에 세계 最古의 목조 건축 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그 만큼 우리나라의 수많은 외침의 파괴를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 하겠다. 이는 목조 건축이 금번의 낙산사 소실에서 보듯이 화재와 戰亂에 얼마나 취약한가를 말해주고 보존이 어려운가를 알 수 있다. 7세기에 완성된 높이 225척(80m)의 황룡사 9층 목탑,2800칸의 고려의 흥왕사, 높이가 200척인 5층탑을 가진 연복사, 백제의 미륵사지 목탑 등 기록에만 있고 사라져 버린 건축물이 엄청 많다.
밑면적이 22m정도의 9층 목탑을 어떻게 건설 하였을까?그 거대한 탑의 설계 도면이나 자료가 있다면. 몽고에 의해 불타는 모습을 보아야 했던 고려의 백성들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건립 후 燒失(소실) 되기까지 600 여 년 동안 강한 비바람, 폭설에 어떻게 견디었을까? 그들도 600여년 기간 동안에 유지 보수의 대책은 있었을 것이다.
Main 기둥은 어떻게 80m의 높이로 연결하였을까? 바람 지진 등 측력(Lateral Force)에 의한 顚倒(전도: 넘어짐)를 어떤 방법으로 방지하였을까?유적지를 보면 주춧돌 위에 기둥을 그냥 얹어 두었는데. 즉 기둥과 地面과는 어떠한 Anchoring도 없는데도 견디었다니 참으로 궁금하다. 현대의 고층 건물은 이에 대한 방지법이 되어 있다. 그것은 자체의 중량에 의하던지, 지하의 土壓에 의존하든지, 아니면 암반에 Anchor를 심던지 한다.
圖錄(도록)에서 보는 중국의 건축이 長大하고 웅장한 맛과 어쩌면 촌스런 색채라면, 일본은 경쾌하고 (날렵하고),날카로운 맛을 내는 조립식 느낌이 들고, 우리의 건축은 중후하고 안정적이며, 有線的이고 명상적이다. 그것은 자연과의 조화와 배치를 중요시하는 사상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무거운 것 같으면서 위로 향한 처마의 곡선은 날아 갈 듯한 날렵함도 느끼게 한다. 서양의 건축이 내부를 장식하였다면 한국의 건축은 단청이란 기법으로 외부를 치장하였다. 물론 해충과 부식의 방지 목적도 있었을 것이지만 목재이니깐 가능하였을 것이다.
목조 건축은 지붕면이 정면인 반면에 서양 건축은 측면이 된다. 그래서 석조 건축물은 깊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건물과 건물을 공간적 시각적 배치를 한 것도 우리 건축의 큰 특징이다.
팔작지붕의 수려함도, 맞배지붕의 단아한 멋과 지붕의 하중을 지지하고 분산하기 위한 공포(木+共 包)의 화려함! 보면 볼수록 아름다움이 있다. 전면 해체 보수를 한 국보15호 봉정사를 찾으니, 찾는 이 별로 없는 한국 최고의 목조 건축물은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정면 3칸, 측면 4칸, 맞배지붕, 柱心包 , 확실한 Entasis기둥, 외부의 기둥 단청은 해체전보다 느낌이 약하다. 내부는 세월의 땟국인지 낡아서 인지 단청은 사라지고 검으죽죽한 색깔만 보이고 있지만 목재의 배치가 아기자기한 것이 참으로 보기 좋다.
간단한 안내판이 초라하게 서있는 천등산 기슭의 이곳은 초등학교 때 수학여행 와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귀신 얘기 듣던 그때가 아련히 기억에 떠오르는 곳이다. 하기사 그때는 한국 최고가 아니었을 시기지만. (초고 98/8월 2005/6/10 보완)
주: 봉정사는 완전 해체하여 썩은 기둥은 교체하여 최근에 복원되었다. 크기는 작지만 기둥이나 내부 구조가 단단해 보이고 부석사 무량수전처럼 곧은 부재만 사용하였다.
>>>>본인의 답입니다.
귀하의 한국문화에 대한 열정에 감복합니다. 이렇게 글을 정리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 정성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제가 본 <한국 문화의 불가사의2-목조건축>을 보고 몇 가지 저의 생각을 써보고자 합니다. 혹시 무지한 생각에서 나온 글이라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귀하의 글에서 엔타시스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시각의 보정도 있지만 구조의 안정성을 꾀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각각 가로보를 적용하기 때문에 배흘림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하지만 저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목구조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가로보가 필수입니다. 즉 저는 도리와 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귀하의 글에서는 가로보 때문에 구조가 불안정하다고 했는데 반대로 가로보 때문에 구조가 안정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건축역사를 전공하신 분의 말에 의하면 창방과 기둥과의 짜임이 고안되는 시기가 곧 목구조가 완성된 시기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실제 한옥현장에 가서 보시면 기둥을 세우고 창방을 돌리고 나면 창방 위로 작업자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창방으로 각 기둥을 엮어주면서 구조가 안정되면서 지붕의 상부구조가 안정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험은 집에서도 간단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냥을 하나씩 세우면 곧 쓰러지지만 성냥 4개로 기둥처럼 서있는 성냥의 위 부분을 접착제로 연결하여 붙여 놓으면 쓰러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즉 보가 각 기둥머리 부분을 엮어 강한 구조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로보 때문에 엔타시스가 필요하다는 것은 제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혹시 저의 이해가 잘못되었다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다음으로 측력에 의한 전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Main 기둥은 어떻게 80m의 높이로 연결하였을까? 바람 지진 등 측력(Lateral Force)에 의한 顚倒(전도: 넘어짐)를 어떤 방법으로 방지하였을까? 유적지를 보면 주춧돌 위에 기둥을 그냥 얹어 두었는데. 즉 기둥과 地面과는 어떠한 Anchoring도 없는데도 견디었다니 참으로 궁금하다. 현대의 고층 건물은 이에 대한 방지법이 되어 있다. 그것은 자체의 중량에 의하던지, 지하의 土壓에 의존하던지, 아니면 암반에 Anchor를 심던지 한다."
우선 우리 목구조에서 측력에 의한 것은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은 목구조 특성상 각 층이 별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오히려 측력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지진은 대표적인 측력입니다. 이 경우 기초부분을 흔들기 때문에 기붕과 보가 모두 경직되게 연결된 철근콘크리트 구조는 오히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구조는 각 층에 설치된 결구부분의 여유치가 오히려 이러한 측력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아직은 과문해서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국내의 건물에서는 토압에 의하여 측력을 견딘다는 것은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지내력은 주로 건물의 자중과 관계 있습니다. 특히 건물이 높아지면 무거워집니다. 몸이 무거운 사람이 진흙에 잘 빠지는 것은 토압이 약해 무거운 것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흙땅에서는 아무리 가벼운 건물이라도 짓지 못합니다. 고층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우선 지내력이 관건입니다. 지내력이 허락치 않으면 인공으로 지내력보강을 하여야하는데 제가 알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층건물 특히 초고층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땅이 암반이어야만 가능합니다.
다음으로 땅속에 앵커를 박는 것은 국내의 경우 대부분 지하수위에 따른 부력 때문입니다. 땅속에도 물이 흐른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땅속에 흐르는 물이 거의 지표면정도에서 흐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땅을 파면 곧 물이 나옵니다. 집을 짓기 위해 넓게 땅을 파면 땅에 커다란 수영장을 만든 것과 같게 됩니다. 지하층을 만들기 위하여 바닥과 지하층외벽을 콘크리트로 만들어 놓으면 수영장에 커다란 바가지를 얹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귀하도 잘 알고 있듯이 바가지는 물에 뜹니다. 물의 부력을 이기려면 부력에 상응하는 무게가 위에 실려져야 합니다. 바가지가 가라앉기 위해서는 바가지 안에 무거운 것을 채워 넣어야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부력은 상상외로 커서 건물이 웬만큼 높지 않으면 부력을 이기지 못합니다. 따라서 이 부력 때문에 집이 뜨지 않도록 바닥 암반에 건물을 묶어 놓습니다. 이것을 건축용어로 록앵커(rock-anchor)이라고 합니다.
국내의 건물에서 풍하중 때문에 록앵커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최근에 지어진 상암월드컵 경기장과 수원월드컵경기장에 지붕구조에 사용한 예가 있습니다. 상암월드컵 경기장의 지붕은 마치 방패연처럼 생겼습니다. 지붕구조를 록앵커한 것은 연이 날라 가지 않기 위하여 연줄로 잡아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도 풍하중 때문에 경기장 구조 자체를 록앵커를 하지는 않습니다.
다음으로 무량수전이 우리나라의 최고의 목조건축이라고 발견된 것이 관야정(세끼노 다다시)에 의한 것이 부끄럽다고 하셨는데 이것을 부끄럽다고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당시 무량수전을 해체 수리하였는데 그 때 상량문이 발견되면서 중수연대가 밝혀진 것뿐입니다. 만일 그때 우리나라사람이 주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우리나라 사람에 의해 연대가 밝혀졌겠지요. 일제시대라는 특수상황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 뿐입니다.
무량수전에 대하여 지적하여야 할 것은 오히려 수리가 제대로 되었는가 입니다. 신영훈 선생에 말씀에 의하면 무량수전은 제대로 수리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량수전의 선자서까래를 보면 엇선자로 되어있습니다. 엇선자는 우리나라 고급건물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고려시대의 것이라 아직 선자서까래가 발전되지 않아 엇선자로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신영훈선생은 당시 무량수전에 참여하였던 목수가 일본사람이어서 그들은 선자서까래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엇선자로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인지에 대하여는 다시 기록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지만 아직은 신영훈 선생의 말을 믿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귀하는 우리나라 건물은 외부에 단장을 하고 서양건물을 내부에 단장을 하였다고 하였지만 고대의 서양의 건물도 외부에 치장을 많이 했습니다. 중세 이후의 건물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파르테논 신전도 예전에는 매우 화려하게 외부를 치장하였습니다. 현재의 모습이 과거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파르테논 신전의 지붕부분은 매우 화려한 색상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스시대 외에도 로마시대 또는 이집트의 건물은 매우 화려한 장식으로 눈을 현란하게 만들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글을 덧붙여 봅니다.
저의 글에 불쾌한 점은 없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귀하의 글을 보고 개인적인 생각을 쓴 것이므로 너무 괘념치 않기를 바랍니다. 혹시 저에게 의견을 주시려면 sansol@hitel.net 로 메일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늘 건강하시고 가내에도 웃음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윗 글에 대한 글쓴이의 답입니다.
***엔타시스가 구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答) 기본적으로 저의 생각과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제가 구조적인 문제를 언급한 것은 도리나 가로보가 기둥과 일체가 되면 엔타시스 있는 기둥이 구조적으로 훨씬(좌굴에 있어서) 견고하다는 생각이고, 가로보 때문에 구조가 불안정하다는 의미는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제 표현상의 문제입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모든 자료와 사람들이 엔타시스는 착시현상의 보완 때문이라고 하지만, 구조적인 강도 차원이 초기에 주된 이유라 생각합니다. 모두가 그렇지만 초기인 들은 구조적인 확신을 가진 다음에 미적인 요소를 고려하였음에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측면하중에 대한 앵커링에 대한 답입니다.
答) 전체적인 면에서는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지진이나 바람에 의한 측력에 의한 전도의 방지 대책은 목조건축의 층마다의 유연성만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목탑은 자중에 의한 안정성 확보를 위한 무게를 첨삭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여 봅니다.
현대 건축에서(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님) , 고층화 지하화 등으로 지하수맥에 대한 부력의 고려가 중요한 요소라 합니다. 그래서 Anchoring이나 자중의 무게와 부피의 비가 중요한 요소로 보입니다. 이점은 설비의 기초 공사 설계 시에도 주요 검토 항목입니다. 주목적은 부력방지용이지만, Anchor나 지하층이 깊은 건물은 측면의 토압이 전도에 일조는 할 것 같습니다.
***색상부분에 대한 답입니다.
答) 전체적인 틀에서 말한 것이고 , 석조 건물도 외양에 치장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목조 건축은 외양이 필수적이고 또 치장이 용이하기 때문인 점도 한몫 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장시간 좋은 의견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2005.8.23)
>>>>귀하의 답 글 잘 읽었습니다. 읽어보니 조금 더 답을 할 필요가 있어 글을 올립니다.
한국건축에서의 기둥은 일체화된 라멘조가 아니고 핀구조이기 때문에 수직력만을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 목조의 기둥은 좌굴이 문제될 만큼 장주(長柱)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좌굴의 문제는 우리건축의 목조구조에서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배흘림기법은 순수하게 시각의 안정감을 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또 하나의 흘림은 민흘림인데 이 경우도 좌굴에 대한 고려보다는 순수한 안정감에 대한 관점에서 고안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나라 건축의 지붕은 매우 무겁습니다. 최근 한옥을 짓는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어떻게 하면 지붕의 하중을 줄이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러한 고민은 옛 사람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기와 밑은 지붕물매를 잡기 위해서 흙으로 채워집니다. 우리의 지붕에 올라가는 흙의 양이 만만치 않습니다. 너무 흙이 많이 올라가면 부재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흙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장연과 단연이 만나는 부분에는 흙 대신 적심목이라고 해서 나무를 채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나무를 채우고 그 위에 기와를 올리는데 필요한 최소의 흙만을 덮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해도 지붕의 무게가 대단해서 오래된 집의 기둥을 밑을 자세히 보면 기둥하부가 하중을 못 견뎌 가라앉은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같은 기와 지붕이라도 일본의 경우는 흙을 덮지 않는 경우도 있고 덮어도 아주 작은 양만을 덮습니다. 즉 우리의 지붕은 부드러운 곡선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 집을 안정하는데 필요한 하중 이상을 부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사이 한옥에서는 지붕을 이중 구조로 만들어 흙을 최소로 덮는 방법을 많이 채택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앵커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최근에 지어지는 건축은 목조가 아닌 이상 자중이 대단합니다. 따라서 웬만한 강풍에도 집이 넘어지지 않습니다. 아주 초고층 건물이 아니고서는 현재 2-30층 정도의 건물에서는 풍하중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풍하중에 대한 고려는 주로 외장재 또는 유리에 대한 것 일 뿐, 건물자체의 구조에서는 고려하지 않아도 자중으로 풍하중을 견딥니다. 따라서 앵커링이 풍하중에 기여하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아직 앵커링을 풍하중을 위하여 설치하였다는 예는 이전 글에서 제시한 예외에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직 100여 층 되는 초고층을 아직 설계한 경험이 없어서 그간 공부를 통한 지식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초고층의 경우는 자체하중을 줄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반 고층건물 설계하듯이 집을 지으면 최하층 기초와 기둥이 너무 커져서 사용상의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심하게 말하면 1층은 거의 기둥 밖에 남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물의 자체 하중을 줄이는 노력을 합니다. 일반건물에서 콘크리트로 만드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는 부분도 석고보드로 마감합니다.
그리고 구조기둥도 철골을 쓰거나 또는 고강도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바닥도 경량제로 쓰려는 노력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물의 자중이 일반 건물에 비하여 매우 적습니다. 이렇게 되면 건물이 바람에 약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한 철골을 쓰다보면 이 것 역시 핀구조로 해석하기 때문에 약간의 유동이 발생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도 앵커링으로 풍하중에 대하여 대비하지 않고 층간 브레싱, 튜브구조 등과 같은 여러 구조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목조건축은 그러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지붕의 자중이 충분하고 높이와 건물의 폭이 풍하중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할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색상에 대한 부분은 재료의 문제보다도 사회문화적인 요소가 더 작용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시 온 글
안녕하십니까. 이런 기회를 갖게 되어 기쁩니다. 이름을 잘 못 표기하여 송구스럽습니다. 바로 교정하였습니다.
사실 목조 건축의 결구 부분이 라멘이냐 핀이냐는 정의는 약간 고려 할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형식으로 보면 라멘에 가깝고, 나무의 유연성이나 간극의 존재로 보면 핀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결국은 초기에는 핀구조로 가다가 변위가 어느 범위를 벗어나면 라멘구조로 정의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추측합니다.
측력에 의한 전도 문제는 현대 건축은 별로 아는바가 없으나 아마 자중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활룡사 9층 목탑은 밑변은 22m 정도이고 높이는 80m 정도가 되니 목조 건축의 자중만으로 지탱하기는 감각적으로 위험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포스트에서 전 횡룡사 목탑을 복원하자고 주장하였고, 당장은 원형은 모르기 때문에 시물레이션이나 설계 검토 정도는 전문가 집단에서 시작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 신문을 보니 경주시에서도 계획을 기지고 있음을 알고 다행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저의 답글
제가 건축을 전공하지만 구조를 전공하지는 않았습니다. 건축에서도 구조는 공학분야로서 따로 전문가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건축설계를 하다보면 구조에 대한 기초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원론적인 부분은 공부해야합니다. 따라서 완벽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답할 수 있어 귀하에 대한 추가 답변을 하겠습니다.
핀구조와 라멘구조에 대한 정의는 구조전체가 일체로 움직이는가 여부에 달렸습니다. 철골구조도 초기에는 핀으로 해석하지만 오래되면 접합부위가 녹 등의 원인으로 일체화하여 라멘구조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목구조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목구조는 지어지고 나서도 건조되면서 수축되거나 변형됩니다. 이러한 것 때문에 집을 지을 때 주요구조(기둥,보,도리,창방 등)부재의 맞춤에는 약간 크게 만들어 꽉 죄이도록 한다고 합니다. 약간 크기 때문에 기둥과 보 등과를 접합할 때는 나무망치로 때려 넣습니다.
그러나 많은 목조건축을 보면 맞춤부분이 조금씩 벌어져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생각으로는 목구조의 경우 대부분의 구조가 완벽하게 일체가 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라멘화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목구조를 라멘으로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배흘림에 대하여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핀으로 해석하였을 경우 좌굴은 기둥높이 1/2되는 지점에서 최대 변이가 일어나고, 아래쪽이 고정되어 있고 위쪽이 핀일 경우는 정확한 기억인지 모르겠지만 기둥 아래에서 1/3지점에서 최대변이가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배흘림 기둥이 상부가 핀이고 하부를 고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귀하가 주장하신대로 좌굴에 대한 대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모조건축의 기둥을 핀구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목구조에서 각 부위의 핀과 고정단의 문제는 실제로 시험을 통하여만 밝혀야할 문제이므로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황룡사의 문제는 건축을 전공한 입장에서는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높이와 밑변의 비가 1/4정도라면 매우 안정된 이등변 삼각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사이 새워지는 고층 빌딩에 비하면 오히려 안정되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건이 넘어가는 것은 무게 중심이 밑 부분의 폭을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황룡사와 같이 삼각형구조인 경우 무게 중심도 아래쪽에 있어 웬만큼 기울어져도 무게 중심이 1층의 폭을 벗어날 경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매우 안정된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하중을 어떻게 모든 기둥에 골고루 분산시켜 집중하중이 생기지 않도록 하였는가가 더 궁금합니다. 각 층이 조금씩 뒤로 물러가는 것 때문에 1층과 2층의 귓기둥은 일직선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최근에 지어진 진천 보탑사 목탑의 경우 귀에서 만나는 보에 브레싱처럼 다시 보를 대고 그 위에 2층 기둥을 올렸습니다. 이것은 3층 목탑으로 끝났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었지만 9층의 경우는 어느 층까지 이렇게 올렸는가에 따라 구조적으로 많은 문제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운데 기둥은 9층의 하중까지 받는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문제가 커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구층목탑의 구조적 핵심은 모든 기둥에 하중을 골고루 분산시키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황룡사의 남은 유구를 보면 기둥의 크기가 달랐다고 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같은 굵기의 기둥이라면 위에 말한 하중의 분산이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새로 목탑을 세우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보탑사 목탑을 세운 신영훈 선생께서도 '3층도 이렇게 힘든데 9층을 어떻게 세웠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아직 연구할 과제가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집의 구조상 빗물처리 방식에 대한 문제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목구조의 방식 즉 하앙식 구조 체채택의 여부와 지붕에 흙이 올라갔는가 여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것에 대한 정확한 자료 및 유구가 없어 누구도 이것이 아비지가 만든 황룡사 구층목탑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차례 주제를 모르고 떠들어 죄송합니다. 결례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외람되게 나서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글을 블로그에 올리셔도 관계없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귀하의 글을 접하고 저도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늘 좋은 글 부탁드리며 앞으로도 우리 문화보전에 더욱 많은 노력 부탁드리겠습니다. 가내 웃음이 가득한 나날이 되시길 바라며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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