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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김왕석의 연재소설 얼굴없는 늑대

by 3856 2007. 12. 10.

 

 김왕석 연재소설

얼굴없는 늑대

 

 출처:풍산개 소설

 

 1918년부터 3·4년 동안에 함경남북도의 산악지대를 돌아다녔던 귀신 늑대가 얼마나 많은 사람<br>
을 잡아먹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18명이라는 숫자는 총독부의 통계였는데 그게 부정확하<br>
다는 것은 총독부 자체도 인정하고 있었다.<br>
범 표범 곰 등에 의한 피해신고는 그런대로 들어왔으나 늑대에 의해 피해 신고는 제대로 들어오<br>
지 않았다. 산간 마을에는 늘 있는 흔해빠진 사건이기 때문에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br>
그곳 산간마을 사람들은 희생자가 적어도 서른 명이 될 것이라고 말했고 쉰 명이 넘는다는 말도 <br>
있었다. 어떤 사냥꾼은 백 명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br>
귀신 늑대의 존재를 맨 먼저 안 사람은 총독부 산림계에 근무하는 아오키라는 젊은 일본인 직원<br>
이었다. 그는 각 군별로 들어오는 맹수에 의한 피해 보고서를 집계하다가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br>
다. 함경남도 단천군 고성에서 늑대에 의해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었다.<br>
 그런데 1주일 후에는 이번엔 함경북도 경성군에 있는 주을 온천지역에서 또 사흘 간격으로 두 <br>
명의 아이들이 늑대에게 물려갔다. 함경남도와 함경북도에서 한달 만에 연달아 여섯 명의 아이<br>
들이 늑대에게 물려갔는데 피해지역이 선(線)이 되어 있었다. 함경산맥 남쪽 기슭을 서쪽에서 <br>
동쪽으로 그어지는 선이었다.<br>
 우연일 수도 있었다. 함경도에는 많은 늑대들이 서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각기 다른 늑대들이 <br>
그런 짓을 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 같은 늑대가 함경산맥을 타<br>
고 가면서 차례로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꼼꼼한 성격의 아오키는 피<br>
해지역에 조회를 해봤다. 여섯 건의 늑대피해 상황에 공통점이 있었다. 늑대를 잡지 못했다는 <br>
점,<br>
늑대를 본 사람이 없다는 점, 피해자가 모두 5세 이하의 아이라는 점, 사건이 밤중에 일어난 것<br>
도 같았고, 발자국이 두 마리라는 점<br>
도 같았다.<br>
그래서 아오키의 책상 위에 귀신 늑대의 정체가 희미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때까지 함경남북<br>
도의 각 군당국을 개별적으로 늑대상황을 총독부에 보고해 왔기 때문에 다른 군이나 도에서 비<br>
슷한 사건들이 일어난 것을 알 수 없었다.<br>
그 많은 늑대 피해가 두 마리의 늑대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을 몰랐다. 모든 피해보고를 집<br>
계했던 아오키만이 그걸 알 수 있었다.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총독부는 촉탁엽사인 무산거주 윤<br>
원술(尹元述) 포수에게 귀신 늑대를 잡아달라는 지령을 보냈다.<br>
그밖에 방법이 없었다. 함경도에 포수가 많다고 해도 신출귀몰(神出鬼沒)하는 귀신을 잡을 수 <br>
있는 포수는 그뿐이었다.<br>
 윤 포수는 함경도 포수들의 대부(代父)였다. 그의 조부는 비록 귀향살이를 했지만 당상관을 지<br>
낸 양반이었고 윤 포수는 몇천 석을 하는 지주였다.<br>
 윤 포수는 일찍부터 총을 갖고 있었다. 영국에서 직수입한 산탄총이었는데 나중에는 사냥안내<br>
를 해 주었던 영국 귀족으로부터 라이플총도 얻었다. 조선총독부도 그걸 알고 있었으나 묵인하<br>
고 있었다.<br>
그 당시 일본정부는 법으로 라이풀총의 소지를 금지하고 있었고 일본인들도 그걸 갖지 못하고 <br>
있었으나 총독부는 윤 포수에게만 그걸 허용했다. 인축에 해를 끼치는 맹수들을 잡는데 윤 포수<br>
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br>
윤 포수는 이미 여섯 사람을 죽인 살인 곰, 네 사람을 잡아먹은 식인범, 열 사람을 죽였거나 중<br>
상을 입힌 표범들을 잡은 경력을 갖고 있었다. 함경 남북도의 산과 짐승을 윤 포수보다 더 잘 <br>
아는 사람은 없었다.<br>
아오키는 1918년 9월에 함경북도 주을에 있는 온천마을에서 윤포수를 만났다. 키가 육 척에 가<br>
까운 거구였으나 양반의 품위를 갖추고 있었다. 손에 영국제 좌우 2연신 라이플을 거머쥐고 있<br>
었다. 근대 문명이 만들어 놓은 최신형 라이플이<br>
었으며 윤포수는 그 무기로 귀신과 대결하려고 했다.<br>
모습을 볼 수 없는 귀신 늑대였다.<br>
주을(朱乙) 온천지대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 온천은 조선에서 가장 고온의 물을 <br>
분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찾아드는 유객들이 많았고 그들을 접대할 마을들이 여기저기에 있었다. <br>
그곳에는 늑대를 잡으려는 사냥꾼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br>
온천 경영자들이 현상금을 걸어놓고 있었다. 늑대 한 마리를 잡으면 5백엔을 벌 수 있었기에 사<br>
냥꾼들은 혈안이 되어 뛰었으나 어림도 없었다. 그들은 늑대의 모습도 보지 못했다.<br>
"모릅니다. 그놈들이 언제 아이를 물고 간 지 모릅니다.”<br>
네살된 첫 사내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는 말했다. 그들은 날이 더웠기에 마당에 멍석을 깔고 잠<br>
을 잤다. 부부가 아이를 사이에 두고 잠을 잤는데 새벽에 일어나보니 아이가 없었다.<br>
늑대는 소리없이 싸리문을 밀어붙이고 마당으로 들어와 아이를 물고 갔다. 아이는 울음소리도 <br>
내지 않았고 핏자국도 없었다. 앞산 풀밭에 아이의 머리만이 남아 있었다.<br>
그래서 그게 늑대의 소행인 줄 알았고 며칠 전에 이웃마을에서 없어진 아이도 그렇게 해서 죽은 <br>
것으로 추측되었다. 난 지 1년밖에 안되는 그 아이는 아버지의 전처가 몰래 데리고 간 것으로 <br>
알려지고 있었다.<br>
아이의 아버지와 새엄마는 안방에서 아이를 데리고 잠을 잤는데 밤새 아이가 없어졌다. 아이의 <br>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방문도 닫혀 있었다.<br>
누군가가 한밤중에 방문을 열고 몰래 들어와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서 방문을 다시 닫아버린 것<br>
으로 보여졌는데 설마 늑대가 그런 짓을 할 줄이야. 그 아이는 시체도 발견되지 않았다.<br>
 거기까지 조사를 했던 윤 포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쉽게 잡힐 늑대가 아니었다.<br>
“윤 선생이 늑대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br>
그날 밤 주막집 안방에서 아오키가 말했다. 그는‘윤상(윤씨)’이라고 부르던 호칭을‘윤선생’<br>
으로 바꿨다. 자기가 상대하고 있는 사람이 일자무식의 포수가 아니고 야생 동물에 대한 풍부한 <br>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는 학자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br>
 “잡아야지요.”<br>
 끝까지 노력하겠다는 뜻이었다.<br>
 “조선에서는 늑대에 대해 여러가지 전설과 소문이 있어요.”<br>
 오래 전부터, 아마 수천 년 전부터 조선의 산간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늑대와 관계를 맺어왔다. <br>
조선의 늑대들은 늘 사람들이 사는 마을 인근에서 살았다. 그들의 밥이 될 멧돼지 노루 토끼 등<br>
이 마을 인근 야산에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br>
먹이가 드문 겨울에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뒤지기도 했고 사람들이 잠든 사이에 닭이나 토<br>
끼를 물고 가기도 했다. 때로는 어린아이들도 물고 갔다.<br>
그 때만 해도 산간마을 사람들은 늑대를 흔히 볼 수 있었다. 산중에서 자주 만났고 사람들이 일<br>
을 하고 있는 논밭 주변에서 서성거리기도 했다. 어떤 놈들은 아예 마을 앞까지 들어와 개들과 <br>
장난을 치기도 했다.<br>
산간마을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늑대를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피해가 너무 크면 집에 덫을 설치<br>
하거나 독이 든 미끼를 던져 놓은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늑대는 그런 것에 잘 걸리지 않았<br>
다. 늑대는 예민한 코로 쉽게 먹이를 식별했다.<br>
산간마을 사람들은 늑대들이 눈앞에서 돌아다녀도 잡지 않았다. 잡히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는 <br>
아예 그만두는 것이다. 늑대는 교활하다는 뜻의 대명사가 되어 있었다.<br>
"늑대는 여러 짐승들 소리를 흉내내지. 밤중에 집안으로 들어와 고양이 소리를 내 사람들을 안<br>
심시키기도 하고 소 울음소리를 내기도 해. 때로는 사랑방 영<br>
감의 기침소리나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까지도 내지.<br>
늑대들은 온 몸에 개똥을 묻혀 개들 사이에 끼어들기도 해. 그러면 개들은 냄새를 맡고 속고 말<br>
아. 늑대는 개들을 속이고 암캐와 교미를 하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개들을 잡아먹어.<br>
늑대와 개들의 차이란 그런거야. 냉혹한 야수인 늑대는 개들을 잡아먹어도 개들은 늑대를 잡아<br>
먹지 못해. 훈련을 받은 사냥개가 아니면 늑대와 싸우지도 못하니까.<br>
그래서 일방적으로 개를 시켜 늑대를 사냥할수는 없어. 내가 이 사냥에 개를 데리고 오지 않은 <br>
이유도 거기에 있어.”<br>
아오키도 윤 포수를 존경하고 따르고 있었지만 윤 포수도 그 일본인 청년을 좋아했다. 윤 포수<br>
는 나라를 뺏은 일본인들을 미워했지만 예외가 되는 일본인도 있었다.<br>
아오키는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한 관리였으며 부지런하고 정직했다. 그리고 윤 포수의 말을 꼬<br>
박꼬박 노트에 기입할 정도로 학구적이기도 했다. 타락한 조선인 관리들과 달랐다. 산림계 직원<br>
인 아오키는 수십 명의 사람을 잡아먹는 늑대를 기어이 잡겠다고 총을 들고나서고 있었다. 윤 <br>
포수가 그 늑대를 잡으려면 몇날 며칠을 산중을 돌아다녀야 된다고 말해 주었는데도 그는 따라<br>
다니겠다고 말했다.<br>
 "늑대를 잡는 데는 또 한사람이 필요해요. 내일 아침이면 그 사람이 여기에 올 것이요"<br>
다음날 새벽 그 사람이 나타났다. 발짝꾼 방 영감이었다. 흰 머리카락을 박박 깎아버린 영감이<br>
었는데 허리가 굽어 있었다. 늘 땅만 보고 짐승의 발자국을 추적했기 때문이었다.<br>
박 영감은 일단 추적을 한 짐승의 발자국은 지옥까지 따라간다는 사냥꾼이었다. 그는 윤 포수의 <br>
오랜 사냥 짝이었다. 박 영감은 그동안 주릉 온천에서 30리쯤 떨어진 어느 마을을 덮친 늑대들<br>
의 발자국을 쫓고 있었다.<br>
“그때 그 늑대를 잡았는가?”<br>
“잡기는 잡았습니다만 나리가 찾고 있는 귀신 늑대가 아니었습니다.”<br>
두 마리의 늑대들이 이틀 전에 마을에 들어와 염소 새끼를 한 마리 물고 갔는데 발자국을 추적<br>
한 결과 그들은 대여섯 마리의 식구를 거느린 무리들이었다.<br>
박 영감은 여러 사냥꾼들과 함께 그 무리들이 살고 있는 소굴까지 추적을 하여 네 마리를 잡았<br>
다는 말이었다. 같은 늑대라도 여러 종류가 있었으며 그렇게 잡히는 늑대들도 있었고 잡을 수 <br>
없는 늑대들도 있었다.<br>
그날 정오께 귀신 늑대의 소식이 들려왔다. 경찰지서에서 순경이 한 사람 달려와 소식을 전했<br>
다. 그 곳 서쪽에서 50리쯤 떨어진 길주군의 어느 산간 마을에 늑대가 나타나 아이를 물고 갔다<br>
는 소식이었다.<br>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아이의 부모까지 밤중에 아이가 물려갔다는 사실을 아침까지 몰랐다니<br>
까 귀신 늑대의 소행인 것 같았다.<br>
윤 포수 일행은 그날 밤에 현장에 도착했다. 미리 경찰에 지시를 해놓았기 때문에 현장이 그대<br>
로 보존되어 있었다. 박 영감은 현장에서 늑대의 발자국을 발견했다.<br>
한 마리는 집 바깥에서 망을 보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안방에서 부모와 함께 잠을 자고 있던 <br>
네살 먹은 사내 아이를 물고 나왔다. <br>
"이런 나쁜 놈들.”<br>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박 영감이 신음을 했다. 늑대는 방문을 열었다. 안쪽으로 밀어서 여<br>
는 방문이 아니라 바깥으로 잡아당겨 여는 방문이었는데 늑대는 아가리로 문고리를 물고 잡아당<br>
겼다.<br>
그리고 방안으로 들어가 아이의 목줄을 콱 물었다. 아이는 목줄을 물렸기 때문에 울음소리도 내<br>
지 못했다. 늑대는 아이의 몸을 반쯤 들어올린 상태로 바깥으로 끌고 나왔다.<br>
윤 포수는 중대한 사실을 발견했다. 귀신늑대는 방에서 아이를 물고 바깥으로 나간 다음 방문을 <br>
닫아 놓고 갔다<br>
. 그 얘기는 전에도 들었지만 설마했는데 사실이었다.<br>
범인이 사람인 것 같으면 그건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문을 열어둔 채 도망가면 찬바람이 <br>
들어가 아이의 가족들이 잠에서 깨어나 추격해올 염려가 있기 때문에 문을 닫는다.<br>
그러나 늑대가 그런 짓을 했다면 예삿일이 아니었다. 늑대의 지능지수는 개와 비슷했고 네살 정<br>
도의 아이와 비슷하다고 알려지고 있었는데 귀신늑대의 지능은 훨씬 높았다. 가증스러울 정도로 <br>
교활했다. 발자국 추적을 시작한 박 영감도 혀를 내둘렀다.<br>
아이를 물고 간 귀신늑대는 마을 밖에서 시신의 운반을 늑대에게 넘겼다. 그리고 추적자가 없는<br>
지를 살피면서 그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앞산 중턱에 있는 풀밭에서 시신을 뜯어먹은 다음 남<br>
겨둔 머리와 발목 등에 흙을 뿌려놓았다.<br>
나중에 와서 다시 뜯어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증거를 감추기 위한 수작이었다. 남긴 부분을 오목<br>
한 곳에 몰아두고 흙을 뿌려놓았으니 찾아내기가 힘들었다.<br>
배를 채운 늑대들은 빠른 걸음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서쪽 함경남도로 빠지는 방향이었다. 한달<br>
쯤 전에 함경남도 단천군에서 아이 사냥을 시작했던 늑대들은 동쪽으로 가면서 함경북도 길주군<br>
과 경성군 등에서 사냥을 했으나 이번에는 거꾸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고 있었다.<br>
일반적으로 늑대는 가는 방향을 잡으면 최단거리를 일직선으로 가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노<br>
련한 늑대 사냥꾼은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귀신늑대들은 달랐다.<br>
그들은 몸을 숨기고 발자국을 지워버리면서 도망가고 있었다. 몸이 노출되는 벌판을 피하고 발<br>
자국이 없어지는 계곡물을 건너가고 있었다. 개나 늑대는 물을 싫어했으나 귀신 늑대들은 수백m<br>
나 계속 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br>
보통 추적꾼들이라면 거기서 추적이 중단된다. 물 바닥에는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 그러나 박 <br>
영감에게는 <br>
그건 가소로운 수작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체되기는 했으나 박 영감은 땅위로 올라온 발자국을 <br>
찾아냈다. 물에서 올라온 늑대는 몸을 흔들어 물을 털어내는데 그 때 털들이 빠졌다.<br>
“한 마리는 짙은 회색털이고 다른 놈은 갈색입니다. 회색은 수놈 갈색은 암놈입니다.”<br>
늑대나 개는 오줌을 누는 것을 보면 암수가 식별되었다. 수컷은 한쪽 다리를 들어올리고 암컷은 <br>
쪼그려 앉는다. 귀신의 정체가 차츰 들어나고 있었다.<br>
그들이 일정한 소굴이 없다는 점도 밝혀졌다. 그들은 다음날 어느 큰 바위 밑에서 오래도록 쉬<br>
고 있다가 훌쩍 떠났다.<br>
소굴이 없다는 것은 그들에게 다른 가족이 없다는 것을 뜻했다.<br>
두 마리의 늑대는 집도 가족도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특이한 일이었다. 늑대는 무리동물들<br>
이었으며 여럿이 있으면 반드시 무리를 짓는다.<br>
함경도의 산에는 많은 늑대들이 서식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왜 무리를 짓지 않는 것일까? 무리를 <br>
지으면 살기가 편할 터인데 왜 마다하는 것일까. 뭔가 결함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는 무리<br>
에 어울릴 수 없는 결점이 있을 것이라는 윤 포수의 말이었다. 추적은 계속되었다. 귀신늑대들<br>
은 계속 서쪽으로 가고 있었다. 낮에는 아무 곳에서나 몸을 숨기면서 쉬었고 밤에는 걸어가고 <br>
있었다.<br>
도망자와 추적자의 거리는 단축되지 않았다. 추적자들은 상대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br>
윤 포수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럴 것이라고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br>
사흘째 되던 날 밤에도 일행은 야영을 했다. 늑대를 추적하고 있으면서도 윤포수는 초가을의 풍<br>
경을 즐기고 있었다. 온 산이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고 모닥불 옆인데도 밤공기가 차가웠다. 모<br>
닥불에는 토끼고기와 계곡에서 잡은 가재들이 구수한 냄새를 내고 있었다. 곁에 앉은 아오키는 <br>
지쳐 있었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br>
늑대들을 따라다녀야만 되느냐고 물어왔다.<br>
 “다른 방법이 없어.”<br>
 윤 포수는 조금 있다가 다시 말했다.<br>
“우리의 추적은 헛된 짓은 아니야. 귀신 늑대는 지금쯤 신경이 날까로울거야. 그놈들은 우리가 <br>
따라온다는 걸 알고 뿌리치려고 하지만 그게 안되니까 화를 내고 있어.<br>
우리는 이렇게 잘 먹고 잠을 자지만 쫓기는 그들은 그렇게 못하고 있지. 배도 고프고 지쳐. 사<br>
람이나 늑대나 모두 신경질이 나면 실수를 하는 법이지. 우리는 그 실수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br>
”<br>
어차피 끈기와 인내의 싸움이란 말이었다. 포수들에게 쫓기고 있던 귀신 늑대들은 그날 밤 실수<br>
를 했다. 늑대들은 어느 화전마을에 들어갔다. 귀신 늑대들이 마을에 들어갈 때는 충분한 사전<br>
답사를 한 뒤에 한밤중에 조심스럽게 들어갔는데 그날은 초저녁에 성급하게 어느 집에 들어갔<br>
다.<br>
그 집에는 다섯 살 난 아이가 있었으나 집안식구들이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뒷간에 가려던 집 <br>
주인이 마당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늑대를 발견하고 고함을 질렀다. 귀신늑대들은 성장한 사<br>
람 특히 남정네와는 싸움을 하지 않는 법이었다. 늑대들은 도망갔다. 귀신늑대들이 그렇게 사람 <br>
사냥에 실패한 일은 드물었다.<br>
“어두웠기 때문에 잘 보지는 못했지만 그리 큰 늑대는 아니었습니다.”<br>
처음 귀신늑대를 본 집주인이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늑대라는 고함소리를 듣고 창과 몽둥이를 <br>
들고 달려갔다. 골목에 두 마리 늑대가 뛰어나왔다. 그곳에는 골목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고 있<br>
었는데 그중 하나는 막다른 골목이었다.<br>
당황한 늑대들 중 한 마리가 그 막다른 골목으로 달아났는데 그때 큰 길로 도망가던 늑대가 ‘<br>
웍’하고 짖었고 그 소리를 들은 다른 늑대가 몸을 돌려 큰 길쪽으로 도망가려 했다. 마을 사람 <br>
중 한 사람이 그 늑대의 앞을 막고<br>
 몽둥이로 후려쳤다. 몽둥이에 맞은 늑대는 낑하고 비명을 질렀으나 큰 타격을 받지는 않은 듯 <br>
몽둥이를 들고 있는 장정의 가랑이 사이로 빠져 도망가 버렸다.<br>
윤 포수는 마을 사람들에게 다시 물어봤다. 마을 사람들은 늑대가 짖는 웍하는 소리와 낑하는 <br>
비명소리를 틀림없이 들었다고 대답했다. 괴이한 일이었다. 늑대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가끔 <br>
한 밤중에 산 정상에서 혼신의 힘을 내면서 길게 울기는 했으나 짧게 짖지는 않았다. 치명상을 <br>
입고 죽을 때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br>
일행은 그날 밤은 마을에서 보냈다. 초가집에서 따뜻하게 군불을 때고 푹 쉬기로 했다. 나흘 동<br>
안이나 밤이슬을 맞으면서 야영을 했던 아오키는 조선의 온돌이 그렇게 좋은 것인지 몰랐다고 <br>
즐거워했다.<br>
 아오키는 막걸리도 구수하다면서 큰 사발로 들이켰다. 윤 포수는 술을 마시면서 박 영감에게 <br>
물어봤다.<br>
 "절름뱅이 추 영감은 언제 죽었지?”<br>
 "3년 전입니다.”<br>
 추 영감은 함경산맥의 첩첩산중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한쪽발을 제대로 쓰지 못했고 한쪽 눈<br>
도 반쯤 감겨 있었으나 깊은 산중에 오두막을 지어 혼자 살았다. 그는 병신 몸인데도 사냥을 했<br>
다. 사냥개들을 시켜 멧돼지들을 잡았다.<br>
 추 영감이 부리는 사냥개들은 멧돼지를 추적하거나 몰이를 하는 개들이 아니었다. 주인이 병신<br>
이었기에 그 개들은 직접 멧돼지를 물어죽였다. 서너 마리의 개들이 70관(240㎏)이나 되는 멧돼<br>
지와 싸웠다. 보통 사냥개들은 못하는 짓이었다.<br>
추 영감의 사냥개는 예사 개가 아니었다. 윤포수도 그 개들을 본 적이 있었는데 눈빛이 달랐다. <br>
긴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고 냉혹한 빛을 내고 있었다. 주둥이도 보통개보다 길었고 꼬리도 축 <br>
쳐져 있었다.<br>
함경도 산중에서 사냥을 하는 개들은 대개 풍산개였는데 풍산개의 꼬<br>
리는 윗쪽으로 말려올라 갔고 눈동자는 검은 색이었다. 그때 윤 포수는 영감을 추궁했다. 영감<br>
이 부리는 개들에게는 늑대의 피가 섞여 있었다. 영감은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br>
병신인 영감에게는 그런 사냥개가 필요했다. 보통 개는 턱힘이 약하고 이빨이 길지 못해 멧돼지<br>
에게 치명상을 줄 수 없었다.<br>
딱딱한 피부와 두꺼운 지방층을 갖고 있는 멧돼지를 죽이려면 길고 날카로운 개 이빨을 깊숙히 <br>
찔러넣고 강한 턱으로 살을 찢어야만 했다. 하지만 개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개들은 그<br>
저 멧돼지의 주변을 돌면서 멧돼지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만들기만 한다. 멧돼지를 죽이는 일은 <br>
포수가해야만 했다.<br>
그러나 추 영감은 그 일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부리는 개들에게 늑대의 피를 섞었다. 추 <br>
영감은 암캐가 발정을 하면 그 개를 데리고 산을 돌아다니면서 암내를 뿌렸다. 늑대의 수컷을 <br>
유인하려는 짓이었다.<br>
추 영감은 밤이 되면 암캐를 집밖에 묶어 놓았다. 그러면 밤중에 늑대가 나타나 암캐와 교미를 <br>
하는 것이다. 늑대와 개는 4촌간이며 교미도 할 수 있었고 새끼도 낳을 수 있었다. 그 새끼들은 <br>
번식력이 있어 늑대의 피를 이어간다.<br>
야생의 늑대와 가축인 개를 교미시키는 짓은 위험했다. 그 개에게는 야생의 피가 섞여있어 언제 <br>
무슨 짓을 할 지 몰랐다. 그게 다른 포수였다면 윤포수는 야단을 쳤을 것이지만 병신 몸인 그에<br>
게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br>
추 영감은 3년전에 죽었다. 행방불명이었고 뼈도 찾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가 늑대들에게 잡아<br>
먹혔다고 말했으나 사실여부는 알 수 없었다. 추 영감과 함께 그가 기르고 있던 세 마리의 개들<br>
도 사라졌다. 그들은 모두 늑대의 피가 섞여있는 늑대 개들이었다. 사람들은 주인이 죽었으니 <br>
그 개들도 굶어죽었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윤 포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br>
 늑대개들은 주인이 없어도 자기들끼리 사냥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br>
“그렇다면…”<br>
아오키가 긴장했다. 귀신늑대, 얼굴 없는 늑대의 정체는 늑대개였던가.<br>
윤 포수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었다. 마을을 습격했던 늑대들은‘웍’하고 짖었고 <br>
‘낑’하는 비명소리를 냈다고 하지 않았던가. 보통 늑대는 그렇게 교활하지는 못했다. 사람의 <br>
약점을 그렇게 잘 알고 서른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잡아먹을 수 없었다.<br>
다음날 아침 다시 추적이 시작되었다. 늑대 중 한 마리가 절름거리고 있었다. 크게 다치지는 않<br>
았으나 사람 사냥을 계속하기에는 지장이 있을 것 같았다.<br>
“이거 보시오.”<br>
정오께 박 영감이 어느 밭떼기를 가리켰다. 수확이 끝난 감자밭이었는데 늑대들이 버려진 작은 <br>
감자들을 먹은 것 같았다. 늑대는 육식 동물이었으며 아무리 굶주려도 감자는 먹지 않는다. 감<br>
자를 먹을 수 있는 것은 개들이었다. 사람들에게 사육된 개들은 잡식성 동물이 되었던 것이다.<br>
늑대들은 계속 서쪽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함경산맥을 타면서 개마 고원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br>
러나 가는 길이 좀 달랐다. 늑대들은 그때까지는 마을들이 드문 드문 있는 산기슭을 가고 있었<br>
으나 사냥꾼들의 추적이 빨라지자 산중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마을을 덮칠 생각을 버린 것일까.<br>
“나리, 뭔가 좀 이상한데요.”<br>
늑대들이 도망가고 있는 첩첩산중에는 죽은 추 영감의 산막이 있었다. 풍산개와 늑대를 교미시<br>
켜 늑대개를 만들었던 추 염감이었다.<br>
“혹시….”<br>
그날 오후 늦게 산막이 발견되었다. 통나무로 기둥을 세워 흙돌로 벽을 치고 마른 풀로 지붕을 <br>
덮은 산막이었으며 사람이 자는 방 하나와 곳간이 하나 있었다. 문이 없는 곳간에는 개들이 자<br>
는 것 같았다.<br>
 빈집에 늑대들의 발자국이 있었다. 늑대들은 그 곳간에서 쉬고 있다가 사냥꾼들이 오는 것을 <br>
보고 도망간 것 같았다. 이젠 귀신개들의 정체가 밝혀졌다. 그들은 추 영감이 기르고 있던 늑대<br>
개들이었다.<br>
늑대개들은 주인이 죽고 난 뒤 스스로 살길을 찾았다. 그들에게는 늑대의 피가 섞여있었으나 늑<br>
대의 무리에 끼어들 수는 없었다. 개의 피가 섞여 있었기 때문에 늑대들이 받아주지 않았다.<br>
늑대들은 늑대개들을 세력권 밖으로 쫓아냈다. 수십마리나 되는 늑대들과 싸울 수는 없었다. 늑<br>
대개들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 가까운 곳으로 내려갔으나 사람들도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br>
다. 사람들은 그들을 개가 아닌 늑대로 봤다.<br>
윤 포수도 언젠가 추 영감이 사육하고 있던 늑대개들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의 겉모습은 개보다 <br>
늑대에 더 가까웠다. 날카로운 눈빛이 그랬고 길게 처진 꼬리도 그랬다.<br>
산간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늑대개를 늑대라고 볼 만 했다. 쫓겨난 늑대 개들은 갈 곳이 없었다.<br>
늑대 개들은 밤중에 마을에 들어가 가축을 잡아먹다가 아이들까지도 물고 갔다. 식인늑대가 된 <br>
것이다.<br>
늑대 개들은 산막을 찾아간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들 중 암캐는 다리를 다쳐 절름거리고 있었으<br>
며 먹이 사냥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혹시 주인이 있으면 도움을 받으려고 산막에 간 것일까.<br>
개들에게는 회귀성이 있었다. 사람들이 느끼는 향수와 비슷한 것이었다. 지난 과거를 쫓으려는 <br>
습성이었다. 윤 포수는 그 식인 늑대개들에게 한 가닥 연민의 정을 느꼈다. 아오키도 그랬다. <br>
사냥꾼들은 그날 밤을 산막에서 보냈다.<br>
 산막은 몇 년 동안이나 주인 없이 방치되어 있었는데도 그대로 있었다. 방안에는 짐승들의 털<br>
과 그들이 먹었던 먹이의 뼈들이 널려 있었다. 사람과 개들이 떠난 빈집에 여우 너구리들이 들<br>
어왔고 곰도 들어온 것 같<br>
았다.<br>
그런 쓰레기들을 치워버리고 군불을 때니까 온몸이 따뜻해졌다. 흙냄새와 함께 수십년 동안이나 <br>
그곳에 살았던 사람의 냄새까지 스며나오는 것 같았다. 불쌍한 주인이었다. 한쪽 눈이 멀고 한<br>
쪽 다리도 절름거렸던 병신은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해 그 산중으로 도망가 개들을 데리고 살<br>
았다. 그리고 혼자 죽었다. 아무도 그의 시신을 찾아 물어주지 않았다.<br>
 “추가놈은 가끔 풍산의 장터에 나왔지요.”<br>
 박 영감이랬다. 추 영감은 짐승 털들을 갖고 장터에 나왔으나 아무도 그와 상대를 하지 않았<br>
다. 표정이 험상궂었고 화를 잘내기 때문이었는데 그래도 같은 사냥꾼인 박 영감과는 술을 마셨<br>
다.<br>
“10년쯤 전에 그는 표범 껍질을 한 장 갖고 나왔어요. 꽤 큰 표범이었으나 전혀 값이 나가지 <br>
않았습니다. 개들이 잡는 것이었기에 걸레조각처럼 찢어져 있었습니다. 그게 팔리지 않아 그는 <br>
화를 내 그걸 나에게 던져주고 풍산개 강아지 한 마리를 구해달라고 말했지요.”<br>
제대로 된 표범 껍질 한 장이면 다 큰 풍산개 열 마리라도 살 수 있는 값이었으나 추영감은 그<br>
걸 강아지 한 마리와 바꿨다. 그러나 꽤 좋은 강아지였으므로 추 영감은 만족하여 박 영감과 술<br>
을 마셨다.<br>
 “이놈을 잘 기르면 곰보놈의 개에게도 이길 수 있을거야.”<br>
 곰보 강 서방의 개는 풍산에서도 이름난 투견이었으며 어느 개도 당하지 못했다. 추 영감의 개<br>
도 그놈에게 물려죽었다. 그래서 추 영감은 복수를 하려고 이를 갈고 있었다.<br>
그런 일이 있은지 3,4년 후에 추 영감은 풍산장터에서 열린 투견대회에 나타났다. 그는 데리고 <br>
온 개를 싸움판에 내보내려고 했으나 곰보 강 서방이 그걸 막았다.<br>
“그 개는 안돼. 그건 개가 아니라 늑대야. 늑대는 싸움판에 나올 자격이 없어.”<br>
 추 영<br>
감은 늑대가 아니라고 우겼으나 그가 데리고 온 개에게 늑대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속일 <br>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길게 위쪽으로 치켜올라간 눈과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그 개의 신원을 <br>
밝혀주고 있었다.<br>
 심사원들이 그 개의 출전자격을 박탈하자 추 영감은 곰보 강서방의 멱살을 잡고 박치기를 했는<br>
데 절름발이인 그가 강서방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추 영감은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맞고 투견<br>
장에서 쫓겨났다.<br>
“그는 만들면 안될 늑대개를 만들어 냈지요. 그래서 태어나서는 안될 괴물들이 태어난 것입니<br>
다.”<br>
태어나면 안될 괴물들은 계속 서쪽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암캐는 그때까지도 절름거리고 있었<br>
다.<br>
늑대 개들은 사람 사냥을 못하고 있었다. 1주일에 한번 꼴로 아이를 잡아 먹었던 그들도 더 이<br>
상 그 짓을 못했다. 하긴 그들 뿐만 아니라 다른 늑대들도 서리가 내리는 10월이 되면 아이 사<br>
냥을 하기가 어려웠다. 통계상으로 봐도 늑대가 아이들을 물고 가는 시기는 주로 여름이었다.<br>
사람들이 문을 밀어놓고 잠을 자거나 마당에 멍석을 깔고 잠을 자는 시기였다. 늑대들은 더위에 <br>
방심한 사람들의 틈을 타 아이사냥을 했는데 늦가을이 되면 그게 어려웠다.<br>
가을에는 마당에서 자는 사람들이 없었고 문을 열어놓고 잠을 자지도 않았다. 논밭에서 수확을 <br>
다 끝낸 사람들이 집에 들어 앉아있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였다.<br>
그러나 그 늑대개들은 그동안에는 가을이나 겨울에도 사람 사냥을 했었다. 아오키의 조사에 의<br>
하면 늑대개들은 계절에 관계없이 사람 사냥을 했다. 그런 늑대개들이 사람 사냥을 못하게 된 <br>
이유는 그들이 윤 포수 일행에게 쫓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윤 포수 일행은 벌써 7·8일 동안<br>
이나 추적을 하고 있었다. 늑대개들은 갖은 수단을 부려 추적자들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소용없<br>
었다. 박 영감은 지옥까지도 발자국을 따라가는 사냥꾼이<br>
었다.<br>
늑대개들은 신경질이 나고 지쳤다. 늑대란 끈기가 있는 동물이었으나 쫓기는 자의 불안과 초조<br>
감이 그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늑대개들은 몇 번이나 낮에 숨어서 쉬고 있다가 추격을 받고 황<br>
급히 도망가고 있었다.<br>
쫓기는 자들에게는 사냥을 할 여유도 없었다. 사냥을 못한 그들은 굶주리고 있었다. 그들은 나<br>
무 뿌리 밑을 파헤쳐 벌레들까지 잡아먹고 있었다.<br>
아오키는 그제야 윤 포수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윤 포수는 그 늑대사냥이 장기가 될 것이라는 <br>
것을 알고 심리전(心理戰)을 벌이고 있었다. 총을 쏘아 죽이기 전에 심리적인 압박을 가해 늑대<br>
들을 차츰 죽음으로 몰아놓고 있었다.<br>
늑대들의 도망가는 속도도 느려지고 있었다. 지쳤을 뿐만 아니라 암컷이 절름거리고 있었다. 암<br>
컷을 거의 세 다리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수컷은 암컷을 버리고 갈 수 있었다. <br>
제대로 따라오지도 못하는 짝을 버리고 혼자라도 살아 남아야만 했다. 그러나 수컷은 그렇게 하<br>
지 않았다. 그놈은 먼저 가다가도 암컷이 따라오지 못하면 기다려주고 있었다.<br>
“보통 개라면 이렇게 하지 않아.”<br>
윤 포수가 말했다. 그는 많은 사냥개들을 사육했으며 개들을 잘 알고 있었다.<br>
“개같은 놈이라는 말이 있지. 수캐들은 교미를 하려고 설치지만 암캐를 보살펴 주지는 않아. <br>
암캐가 자기의 새끼를 낳아도 모른 체를 하지. 산후의 암캐가 굶주리고 있었도 먹이를 갖다주는 <br>
법이 없어.”<br>
늑대는 달랐다. 늑대는 암컷이 새끼를 낳으면 먹이를 날라주고 보살펴 주었다. 늑대는 새끼들에<br>
게까지 먹이를 갖다주었다.<br>
 "늑대와 개는 본래 같은 조상을 둔 동물들이었는데 개들은 사람들의 보호를 받고 살아오다 길<br>
들여진거야. 늑대처럼 무리를 지어 서로가 협조하며 사는 습성이 없어져 자기만을 아는 이기적<br>
인 가축이 된 <br>
거지."<br>
그러나 그 늑대개의 수컷은 병든 암컷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보호해주었다. 늑대의 피가 섞여 <br>
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늑대개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늑대개들은 그 동안 낮에는 쉬고 밤에만 <br>
도망가고 있었으나 이젠 그런 여유가 없어졌다. 늑대개들은 낮에도 쉬지 않고 도망갔다.<br>
산 정상에 선 윤 포수의 망원경에 늑대개들의 모습이 잡혔다. 건너편 산 아래쪽의 고개 길을 두<br>
마리의 늑대개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추적 9일만에 비로소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br>
앞서가는 수컷은 희끄무레한 회색을 띄며 덩치가 엄청났다. 같은 늑대라도 서식하고 있는 지역<br>
에 따라 크기가 달랐는데 일반적으로 북쪽 함경도에 살고 있는 늑대들은 남쪽 경상도나 전라도<br>
에 살고 있는 늑대들보다 덩치가 컸다.<br>
함경도에는 몸무게가 20관(80키로)가까이 되는 늑대들도 있었는데 일부학자들은 그건 늑대가 아<br>
니라 삼림 이리라고 주장했다. 삼림 이리는 시베리아 알래스카 등지에 사는 이리들이었다.<br>
그 수컷은 그런 늑대의 피를 받은 것 같았다. 추 영감이 투견장에서 죽은 자기 개의 원수를 갚<br>
기 위해 만들어낸 괴물이었다. 그러나 암컷은 모습이 달랐다. 수컷보다 덩치가 작았고 수컷처럼 <br>
꼬리가 축쳐져 있지 않았다. 암컷은 늑대보다 개의 피를 더 많이 받은 것 같았다. <br>
암컷은 절름거리고 있었다. 다친 다리는 겨우 몸의 중심을 잡는데만 쓰여지고 있었다. 늑대개들<br>
은 구릉을 넘어가고 있었는데 먼저 구릉을 넘었던 수컷이 별안간 몸을 돌려 오던 길로 도망을 <br>
쳤다. 그놈은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암컷도 그 놈을 따라 도망갔다.<br>
고개 너머에는 천하대장군이라고 쓴 장승이 있었다.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눈을 부릅뜬 장승을 <br>
보고 늑대개들은 달아난 것이다. 늑대개들은 장승이 있는 곳에는 마을과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br>
알고 있었다. 마을을 수호한다는 장승이 제 구<br>
실을 했다.<br>
늑대개들은 그렇게 빈번하게 마을을 습격하고 백 명 가까운 아이들을 잡아먹었지만 사람들을 두<br>
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의 약점을 알고 있을뿐 만 아니라 그 강한 힘도 알고 있었다. 그<br>
들이 그렇게 많은 사람 사냥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br>
사냥군들은 오던 길을 되돌아오는 늑대개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기회가 온 것이다.<br>
 장승을 보고 놀란 늑대개들은 산꼭대기 바위 뒤에 숨어었는 사람들을 발견 못했다. 고개 길에<br>
서 산 중턱으로 들어서자 늑대개들은 조금 마음이 놓인 듯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br>
윤 포수는 나뭇가지로 받침대를 만들어 총신을 고정시켰다. 라이플총은 법에 의해 소지가 금지<br>
되어 있었으나 윤 포수의 총은 총독부의 묵인을 받고 있었다. 영국과 화란의 합작회사가 만든 <br>
구경 350의 최신형 총이었으며 똑같은 총신이 두 개 옆으로 나란히 붙어 있었다.<br>
그 총신들은 각기 독립하여 기능했으므로 두 발의 총탄을 거의 동시에 발사할 수 있었다. 총신<br>
이 하나뿐인 연발총의 경우에는 첫 탄을 쏘고 제2탄을 쏠려면 아랫 쪽 탄창에 있던 총탄이 윗쪽<br>
으로 올라올 때까지의 시간이 필요했으나 총신이 두 개 있는 총의 경우에는 그 시간이 필요 없<br>
었다.<br>
늑대개들이 가까이 오고 있었다. 250m 그리고 100m. 그때 앞서 오던 수컷이 대가리를 들어올렸<br>
다. 예민한 그 놈의 코가 바람을 타고 날려오는 사람의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br>
더 기다릴 수 없었다. 산탄총 같으면 총탄이 닿지도 않는 거리였으나 라이플은 쏠 수 있는 거리<br>
였다. 굉음이 울려퍼졌다. 연달아 두 번 벼락치는 소리가 났다. 앞서 오던 수컷이 뒹굴었고 뒤<br>
따라오던 암컷도 뒹굴었다. 산중턱에 있던 늑대 개들은 아랫 쪽 풀밭으로 굴러 떨어졌다.<br>
 "맞았다. 맞았어."<br>
아오키는 <br>
환성을 질렀고 윤 포수와 박 영감은 늑대개들이 굴러 떨어진 풀밭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수컷은 <br>
대가리에 총탄을 맞고 이미 죽어있었다. 귀신늑대 얼굴 없는 늑대로 알려진 괴물도 현대문명이 <br>
만들어낸 라이플에는 당해내지 못했다.<br>
암컷은 아직 죽지 않았다. 총탄이 등에서 아랫배를 관통하고 있었으나 암컷은 죽지 않았다. 암<br>
컷은 이미 숨이 끊어진 수컷 옆으로 기어가 그 몸을 혀로 핥아주고 있었다. 암컷은 바로 앞까지 <br>
달려온 사람들을 발견했다.<br>
암컷은 덤벼들지도 않았고 반항도 하지 않았다. 암컷은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마치 주인<br>
에게 꾸지람을 당하고 있는 개의 표정이었다. 암컷의 눈은 용서해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었다.<br>
윤 포수는 총을 쏘지 못했다. 그건 늑대가 아니라 개였으며 개를 사랑하는 윤 포수는 차마 총을 <br>
쏘지 못했다. 윤 포수가 총을 쏘지 못하자 박 영감이 허리에 차고 다니던 도끼를 날렸다. 암컷<br>
은 수컷의 몸 위에 엎어져 죽었다. 태어나면 안될 늑대개들의 마지막이었다.<br>
장장 열흘동안이나 추적했던 식인늑대 사냥은 그것으로 끝났다. 늑대개들의 시체를 조사한 결과 <br>
수컷은 늑대의 피가 짙었고 암컷은 풍산개의 피가 짙었는데 그 시체들은 아오키가 일본으로 갖<br>
고 갔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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