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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광장
역사소설

불범사냥

by 3856 2007. 12. 10.

 

불범사냥

 

출처:풍산개 소설

 

딸을 시집보낸 해였으니까 1919년 가을이었다. 윤원술(윤원술) 포수가 그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br>
이미 촌장집 사랑방에 불이 환했다. 함경산맥과 무산령이 맞닿은 산골마을이었다. 꽤 넓은 방안<br>
에는 열 명쯤 되는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는데 벌써 술잔이 몇 순배 돌아간 듯 목소리들이 <br>
높았고 거칠었다.<br>
 "아이고, 나리 오셨습니까."<br>
 촌장이 얼른 일어나 윗목 자리를 비웠다. 윤 포수는 양반이고 3,000석을 가진 지주였다. 그는 <br>
이름난 포수였으며 함경도 사냥꾼들의 대부였다. 타지에서 온 사냥꾼들도 으레 찾아가서 인사를 <br>
해야할 어른이었다.<br>
 "범이 처녀를 물고 갔다는데.."<br>
 윤포수의 질문은 그렇지 않아도 험악했던 말다툼에 불을 질렀다.<br>
 "범은 무슨 범. 미순이를 데리고 간 건 귀신이지. 몽당귀신이라는 말이지요."<br>
 망건을 두른 마을 장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여섯 사람들이 그런 주장을 한 무당의 말이 <br>
옳다고 동조했다.<br>
 "어허. 그렇지 않다는데도.. 핏자국이 남아있고 범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는데 아직도 무당년의 <br>
말만 믿고 그런 소리를 하고 있나."<br>
 윤 포수도 얼굴을 알고 있는 그 마을 창꾼이 고함을 질렀다. 그는 한밤중에 마을에 들어와 미<br>
순이를 물고 간 것은 범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미순이의 시체를 아직 발견 못했으나 미순이 <br>
집 마당에 핏자국이 난자했고 피묻은 범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br>
창꾼의 말이 옳다고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몽당귀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 <br>
많았다.<br>
귀신과 범은 산골마을에서는 가장 빈번하게 오르<br>
내리는 얘깃거리였다. 귀신과 범이 한꺼번에 나와 마을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있었다.<br>
촌장이 떠드는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차근차근 경위를 설명했다.<br>
이틀전 한밤중에 올해 열아홉 되는 미순이가 없어졌다는 말이었다. 미순이는 시집갈 날까지 받<br>
아놓고 있는 얌전한 처녀였는데 남동생 두 명과 함께 건넌방에서 잠을 자다가 온데 간데 없이 <br>
사라졌다.<br>
집안 사람들은 아침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마을사람들이 가보니 마당에 핏자국이 있었고 범의 <br>
발자국이 찍혀 있었으나 시체는 없었다. 마을 장정들이 그 핏자국을 추적했으나 발자국은 앞산 <br>
기슭에서 없어졌다. 물론 미순의 시체도 찾지 못했다.<br>
마을 사람들은 처음엔 그게 범의 소행이라고 단정했다. 범이 인근 산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소문<br>
도 있었다. 이웃 나무꾼들이 숲 속을 지나가는 범을 봤다는 얘기였다.<br>
함경도 산골에서는 범이 사람을 물고 갔다는 얘기는 흔했다. 매년 수십 명이 죽었고 수백 마리<br>
의 가축들이 물려갔다.<br>
그런데 마을 무당이 떠들기 시작했다. 산신령님에게 여쭈어 봤더니 그런 짓을 한 것은 산군(산<br>
군)이 아니고 몽당귀신이라는 말씀이었다. 무당의 주장은 자세했고 몽당귀신의 정체까지도 밝혀<br>
내고 있었다.<br>
무당은 미순이를 잡아간 몽달귀신은 죽은 삼달이라고 집어냈다. 미순이 집 이웃에 사는 총각이<br>
었다. 삼달이는 그 해 봄 곰사냥을 하다가 곰에 찢겨 죽었다. 그 때 마을 장정 여덟 명이 곰을 <br>
포위했다. 본디 겨울잠을 자고 봄에 바깥에 나온 곰이란 힘이 없어 쉽게 잡을 수 있었는데 그 <br>
곰은 그렇지 않았다. 60관(240 )이나 되는 큰 불곰은 일찍 겨울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으며 매우 <br>
사나웠다. 그런 곰을 창으로 잡겠다는 계획부터가 잘못된 것이었다.<br>
곰은 창을 맞았는데도 반격했다. 그래서 곰과 맞서고 있던 창꾼이 옆으로 피했다. 그 창꾼은 곰<br>
사<br>
냥의 경험이 많았는데 워낙 크고 사나운 곰이었기에 맞대결을 못했다. 그는 창으로 곰을 찔러야<br>
만 했으나 몸을 피했다.<br>
그래서 그 창꾼 뒤에 있던 삼달이가 당했다. 삼달이는 몰이꾼에 불과했기 때문에 창도 없이 몽<br>
둥이만 갖고 있었는데 그까짓 몽둥이로 곰을 죽일 수 없었다. 총각은 그래도 몽둥이로 곰을 후<br>
려치면서 싸웠는데 그 사이에 다른 사냥꾼들은 모두 도망가버렸다.<br>
도망간 사냥꾼들은 총각의 비명소리를 들었으나 누구 하나 그를 살리려고 하지 않았다.<br>
사냥꾼들이 달려온 다른 사냥꾼들과 함께 현장에 되돌아갔을 때는 총각은 이미 곰에 찢겨 죽어 <br>
있었으며 그 눈에는 자기를 버리고 도망간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서려 있었다.<br>
"그래, 그래서 삼달이가 몽달귀신이 된 거야. 그것도 몰라?"<br>
무당은 눈을 치켜뜨고 고함을 질렀다. 공교롭게도 곰사냥을 했을 때 창을 들고 있으면서도 곰과 <br>
대결을 하지 않고 도망간 창꾼은 죽은 미순의 아비였다. 비겁한 그가 총각을 죽였다고 무당은 <br>
질타했다.<br>
총각이 장가도 못가고 죽으면 몽달귀신이 된다는 것은 다 알려지고 있는 사실이 아니겠는가. 아<br>
비에게 원한을 품은 몽달귀신이 딸을 데리고 갔다는 건 뻔한 일이 아니겠느냐. 무당은 그렇게 <br>
말을 내뱉었다.<br>
 윤 포수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마을이 요란했다. 굿판이 벌어지고 있었으며 울긋불긋한 <br>
옷을 입은 무당이 입에 칼을 문 채 날뛰고 있었다.<br>
"네 이놈 몽달귀신 썩 물러나지 못할까. 천지신명께서 나오셔서 네놈을 꾸짖고 계시지 않는가. <br>
눈을 감고 저승으로 가지 못할까."<br>
그 무렵 이웃마을에서는 또 다른 고사를 치르고 있었다. 산군(산군.범)에게 돼지를 제물로 바치<br>
면서 많은 사람들이 산군의 노여움을 달래고 있었다. 그들은 범이 미순이를 잡아먹었다고 믿는 <br>
사람들이었다. 매년 정해진<br>
 날에 지냈던 산군님에 대한 고사를 그 해에는 지내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는 말이었다.<br>
사냥꾼들도 산군(산군)이 미순이를 잡아먹었다고 믿고 있었다. 사냥꾼들도 평소 범이 산신령님<br>
의 사도라고 믿고 있었으며 범은 사냥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설사 범이 사람이나 가축을 해쳤을 <br>
경우에도 그들은 범과 싸우지 않았다. 범과 싸우는 것보다 범을 달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br>
각하고 있었다.<br>
그곳 사냥꾼들은 윤 포수에게 범의 발자국을 추적하다가 놓쳐버렸다고 말했으나 놓친 것이 아니<br>
라 추적을 포기한 것이었다. 산군과 싸우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리라. 그들을 나무랄 수도 없<br>
었다. 고작 창이나 활을 갖고 사냥하는 그들이 어떻게 범과 싸우겠는가. 인근 마을에는 화승포<br>
를 갖고 있는 포수도 있었으나 그것도 범과 싸울 수 있는 무기가 되지 못했다. 화승포는 불이 <br>
붙어 있는 심지를 총신 안에 있는 화약에 닿게 해야만 폭발이 되었는데 그 동안 나를 쏘라고 멍 <br>
하니 기다리고 있을 범이 어디 있겠는가.<br>
윤 포수는 촌장집에서 하루를 더 머물었다. 그는 발짝꾼 서 영감을 기다렸다. 범사냥을 전문으<br>
로 하는 발짝꾼이었으며 으레 범 사냥을 함께 하는 짝이었다.<br>
무당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당은 겨우 몽달귀신을 달래고 있는데 어떤 놈이 부정한 쇠<br>
붙이를 들고 마을에 들어와 굿을 망쳐놓느냐고 소리쳤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나이들이 윤 포<br>
수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들은 경멸의 눈으로 윤 포수를 바라보며 적의와 위협의 시선을 들이대<br>
기도 했다.<br>
건달들이었다. 무당은 으레 그런 건달을 서방으로 삼고 있었는데 그 건달 가운데 하나도 무당의 <br>
서방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윤 포수가 지체가 높은 양반이라는 말을 듣고 감히 시비를 걸지 못<br>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 영감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침내 소동은 벌어졌다.<br>
서 영감이 마을 어귀에 있는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알록달록한 헝겊들을 떼내 버렸기 때문이었<br>
다. 본래 서 영감은 무당을 싫어했었다. 그래서 건달들은 서 영감에게 덤벼들었고 싸움<br>
을 말리는 사람들은 없었다. 무당의 편을 들지 않던 사냥꾼들도 싸움을 보고만 있었다. 그들도 <br>
산군을 잡으려는 서 영감을 못마땅히 보고 있던 차였다. 사람을 잡아먹는 범인데도 범사냥을 못<br>
하고 있는 자신들의 무력감이 삐뚜로 드러난 예였다.<br>
 "이놈들, 썩 물러나지 못할까."<br>
 총을 들고 윤 포수의 일갈에 건달들은 멈칫했다. 게다가 촌장의 제지까지 있어 결국 욕설을 퍼<br>
부면서 물러났다. 아무래도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았다.<br>
서 영감은 다음날 새벽부터 추적을 시작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이미 나흘이 지난 뒤여서 핏자<br>
국과 발자국이 희미해졌으나 서 영감은 땅에 엎드려 돋보기 안경으로 꼼꼼히 조사를 했다.<br>
"나리. 이건 줄범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불범(표범)일지도 몰라요."<br>
죽은 불범보다 몸이 두 배나 컸으나 발자국의 크기는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낙엽이 두<br>
껍게 쌓인 산에서는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서 영감은 마을 사냥꾼들이 범의 발자국을 놓<br>
쳤다는 곳에서 식인 짐승의 정체를 밝혀냈다. 소나무 가지에 핏자국이 있었고 찢겨진 미순이의 <br>
옷자락이 걸려 있었다. 나무 줄기에는 날카로운 발톱자국도 나 있었다. 줄범은 나무를 타지 못<br>
했고 그런 곳까지 사람의 시체를 끌어올릴 수 있는 짐승은 불범 외에는 없었다. 불범은 일단 먹<br>
이를 나무 위에 숨겨 놓았다가 나중에 다시 다른 곳으로 끌고 간 것 같았다.<br>
서 영감은 그 날 오후 미순의 시체를 찾아냈다. 머리카락에 덮여 있는 두 개골과 굵은 뼈 몇 개<br>
뿐이었다.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으므로 윤 포수와 서 영감은 유골과 몇 점의 유품을 갖고 <br>
마을로 돌아왔다.<br>
그것으로 미순이가 죽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그게 몽달귀신의 소행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br>
것 같았으나 무당은 승복하지 않았다.<br>
"그건 몽달귀신이 짐승으로 둔갑하여 한 짓이야. 귀신은 여우로 둔갑하기도 하고 범으로 둔갑하<br>
기도 하지."<br>
본디 무당이란 제멋대로 말을 꿰맞추는 법이었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런 말도 믿었다. 마을 사<br>
람들은 몽달귀신이 또 어떻게 둔갑하여 사람들을 해칠지 모른다고 불안해했으며 이 집 저 집에 <br>
얄궂은 헝겊과 종이 등이 붙여져 있었다. 아무튼 식인 불범을 잡아야만 했으나 윤 포수와 서 영<br>
감의 표정이 어두웠다. 쉽지 않았다.<br>
하긴 줄범은 불범보다 덩치가 센 짐승이었으나 그런 차이는 사람을 죽이는데는 별로 문제가 되<br>
지 않았다. 두 발로 걸어다니고 움직임이 느린 사람을 죽이는 데는 큰 힘이 필요 없었다.<br>
사람을 죽이는 데는 불범이 줄범보다 빨랐다. 불범은 몰래 숨어 있다가 갑자기 덤벼들어 목덜미<br>
를 물어 죽였다.<br>
그러나 윤 포수와 서 영감이 난감<br>
해진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때가 나빴다. 온 산이 울긋불긋하게 단풍진 늦가을에는 불범사<br>
냥을 하기가 가장 어려웠다. 노란 바탕에 검은 무늬가 뿌려진 불범의 몸 색깔이 문제였다.<br>
불범이 단풍진 늦가을 숲 속으로 들어가면 아예 모습이 없어져 버린다. 불범이 그 안에 숨어 움<br>
직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바로 앞에서도 불범을 발견 못한다. 모습도 볼 수 없는 짐승을 어떻<br>
게 잡겠는가.<br>
사람은 불범의 모습도 볼 수 없었으나 그쪽은 이쪽의 일거수 일투족을 환히 알고 있었다. 코의 <br>
능력이었다. 사람보다 후각이 몇십 배나 예민한 불범은 먼저 가까이 오는 사람의 냄새를 맡는<br>
다. 그러면 귀와 눈이 냄새가 나는 곳으로 집중된다.<br>
불범의 눈은 사람의 눈보다 예민하지 못했으나 움직이는 물체를 발견하는 것은 빨랐다. 불범은 <br>
숲 속에서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지만 사냥꾼은 돌아 다녀야만 했기 때문에 쉽게 발견된다. 그<br>
런 상황에서 어떻게 불범 사냥을 하겠는가. 숙련된 사냥꾼이란 그런 불리한 상황을 읽을 줄 안<br>
다. 명포수는 결코 무모한 사냥을 하지 않는다. 서영감이 머리를 저었다. 윤 포수도 같은 생각<br>
이었다.<br>
그렇다고 표범 사냥을 포기하거나 연기할 수는 없었다. 한 달쯤 늦추었다가 첫 눈이 내리면 사<br>
냥은 아주 쉬워지겠지만 그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명포수로 알려진 윤 포수가 그까짓 불<br>
범 한 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면 안된다. 명예가 손상되기 때문이다.<br>
방법은 하나뿐. 서 영감이 일어났다.<br>
"나리 제가 갖다 오지요. 지금 떠나면 모레 아침에는 돌아올 수 있겠지요."<br>
윤 포수가 머리를 끄덕였다.<br>
"백두와 금강만을 데리고 오게. 두 마리면 족해."<br>
서 영감은 윤 포수 집으로 가서 사냥개 백두와 금강을 데리고 오기로 했다. 두 마리 모두 맹수<br>
사냥을 전<br>
문으로 하는 풍산개였으며 표범사냥을 한 경험도 있었다.<br>
윤 포수는 범사냥에는 개들을 쓰지 않았으나 표범사냥에는 달랐다. 짐승들에게도 약점이 있었는<br>
데 표범은 개에 대해서 약점이 있었다. 우선 후각이었다. 표범은 후각이 매우 예민했으나 개의 <br>
후각은 그걸 능가했다. 표범이 아무리 단풍진 숲 속에 숨어도 사냥개의 코는 속일 수 없었다.<br>
표범은 또한 범처럼 덩치가 크고 힘이 세지 못했다. 범은 그 강력한 앞발로 개를 후려쳐 즉사시<br>
킬 수 있었으나 표범은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표범의 몸무게는 15관(60 )인데 큰 풍산개도 10<br>
관(40 )이나 된다. 노련한 사냥개가 두 마리면 표범 한 마리보다 힘을 더 쓸 수도 있었다.<br>
표범은 범이나 개보다도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지만 그 대신 몸구조가 섬세했다. 구조가 복잡한 <br>
기계가 충격에 약한 것처럼 표범도 그랬다. 야생동물이 상처를 입으면 먹이사냥을 할 수 없게 <br>
된다. 표범은 자기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강한 적과는 싸우지 않으려고 했다. 어떤 표범들은 <br>
사냥개들에게 쫓겨 나무 위로 올라갔다가 포수의 총에 맞아 죽기도 했다.<br>
그래서 윤 포수는 사냥개들을 데리고 오기로 했는데 그 동안에 또 마을에 일이 벌어졌다. 마을<br>
의 장정 한 사람이 또 변사를 당했다. 그는 독사에게 물려죽었다.<br>
공교롭게도 죽은 사람은 몽달귀신이 되었다는 총각이 곰에게 물려 죽었을때 도망갔던 사람이었<br>
다. 평소 사이가 나빴다는 말도 있었다. 언젠가 두 사람이 싸움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br>
이 늦가을에 독사에 물려 죽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았다. 죽은 사람은 다른 장정들과 함께 마을 <br>
앞산에서 나무를 하러 가다가 참변을 당했다. 산에는 낙엽이 두껍게 쌓여 있었는데 그 속에 독<br>
사가 숨어 있었다<br>
본디 독사는 겨울잠에 들어가기 전에는 되도록 많이 먹어두려고 설쳤다. 그리고 그 때의 독사는 <br>
독이 잔뜩 올라 있었기 때문에 특<br>
히 늦가을에 독사에 물리면 살아날 수가 없었다. 죽은 장정도 조심성이 없었다. 그는 일행과 뒤<br>
떨어져 가다가 지름길로 빨리 가려고 했다. 그는 낙엽들을 마구 짓밟으면서 뛰어가다가 갑자기 <br>
비명을 질렀다. 앞서가던 사람들이 되돌아보니 낙엽 속에서 빠져나온 장정의 발목에 독사가 매<br>
달려 있었다. 독사는 장정이 비명을 지르면서 다리를 흔들었는데도 떨어지지 않았다.<br>
독사는 충분히 독을 주입시킨 다음 도망가 버렸다. 다른 장정들은 독사에 물린 상처에 입을 대<br>
고 피를 빨아냈으나 소용없었다. 장정은 그날 밤 높은 열을 내면서 신음하다가 새벽에 숨을 거<br>
뒀다. 전신이 시커멓게 썩어 있었다.<br>
무당이 또 그것보라고 날뛰고 있었다. 몽달귀신이 독사로 둔갑해 장정을 죽였다는 말이었다.<br>
"내가 뭐라더냐. 부정한 쇠붙이를 가진 놈들이 마을에 머물고 있으면 몽달귀신이 노한다고 말하<br>
지 않았더냐."<br>
무당은 또 흉사가 일어나기 전에 부정한 쇠붙이를 갖고 있는 놈들을 쫓아 내야 된다고 소리쳤<br>
다. 무당의 젊은 서방도 다른 건달들을 데리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윤 포수를 쫓아내라고 선동<br>
했다. 평소 무당에게 얻어먹고 사는 그 친구는 이제 자기가 할 일이 생겼다는 듯 설치고 다녔<br>
다.<br>
마을 사람들은 불안한 표정들이었다. 왜 몽달귀신이 된 총각에게 원한을 산 사람들만 변사를 당<br>
하는 것일까. 불범을 잡겠다던 포수는 촌장집에서 뭘 하고 있는가. 촌장은 물론 무당이나 그 서<br>
방의 선동에 넘어가지 않았으나 그도 난처한 표정이었다. 독사에게 물려죽은 장정의 장례가 치<br>
러지고 있는 마을은 침울했다.<br>
윤 포수는 촌장집 사랑방에서 혼자 조용하게 총을 손질하고 있었다. 총신이 옆으로 두 개 붙어 <br>
있는 영국제 산탄총이었는데 윤 포수는 범이나 곰 등 맹수사냥 때 쓰는 총신은 쓰지 않기로 했<br>
다.<br>
큰 총탄이 장전되는 그 총신은 강력하기는 했으나 동작이 기민한 표<br>
범사냥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표범사냥에는 총탄이 한꺼번에 여러 개 발사되는 총신이 바람직했<br>
다. 명중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 윤 포수는 개짖는 소리를 들었다.<br>
"오냐, 너희들이 오는구나."<br>
개들은 주인을 보더니 짖는 것을 멈추고 천천히 다가왔다. 꼬리를 몇 번 흔들어 인사를 한다. <br>
사냥개는 경박한 짓을 하지 않는다. 애무를 구하려고 주인에게 덤벼들거나 엎드려 기는 따위의 <br>
짓은 하지 않는다. 주인도 가볍게 목덜미를 서너번 두드려 줄 뿐이다.<br>
두목인 백두는 여덟살, 사냥경력이 6년이나 된다. 몸무게 10관(40 )의 당당한 수컷이며 반쯤 뜯<br>
겨나간 왼쪽 귀와 콧등의 상처자국은 그의 훈장이다. 귀는 불범에게 찢겼고 콧등의 상처는 불곰<br>
의 소행이었다. 물론 그 불범과 불곰은 잡혔다.<br>
윤 포수는 그 놈에게 특별한 훈련을 시키지 않았다. 놈은 타고난 사냥개였고 무산의 산에서 배<br>
운 것이 바로 훈련이었다. 그러나 백두는 주인이 내리는 세 가지 명령만을 어김없이 따랐다. 주<br>
인이 일정한 방향을 손가락질하며 몸을 밀면서 "가, 가서 잡아"라고 명령하면 소리 높여 짖으면<br>
서 추적을 시작했고, 주인이 "덤벼"라고 소리치면 상대가 어떤 짐승이라도 덤벼들었다. 세번째<br>
의 지상명령은 "안돼"였다. 그 명령이 내려지면 개는 하던 일을 즉시 중지했다. 쓰러트린 짐승<br>
을 계속 공격해 값비싼 털을 망쳐 놓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br>
윤 포수는 산길 80리를 달려온 서 영감과 개들을 쉬게 했다. 우선 그들의 피로를 풀어주어야만 <br>
했다. 무당의 젊은 서방이 기웃거리고 있었다. 또 소문을 만들어 내려는 수작이었는데 윤 포수<br>
는 백두에게 "덤벼"라고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명령을 내렸으면 그 친구는 혼이 났을 것이었<br>
다.<br>
사냥꾼들은 다음날 날이 밝기 전에 마을을 떠났다. 산에는 안개가 자욱했고 낙엽들이 밤이슬에 <br>
젖어 있었다. 두 마리의 개들은 지그재그형으<br>
로 앞서 가고 있었다. 가끔 코를 땅에 대고 조사를 하기도 한다.<br>
그들에게는 사람들에게 없는 능력이 있었다. 그들의 코는 며칠 전에 그 곳에 있었던 짐승의 냄<br>
새까지도 맡을 수 있었다. 사람의 감각기관은 현재에 존재하는 대상만을 인지할 수 있었으나 개<br>
의 그것은 과거에까지 소급하여 인지를 한다. 어떤 짐승을 추적할 것인가. 그건 개들에게 맡겨<br>
두어도된다.<br>
맹수사냥개인 그들은 살쾡이 오소리 너구리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에 <br>
나뭇잎과 풀들이 오색영롱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지없이 아름다웠으나 위험하기도 했다. 숲 속<br>
에 어떤 맹수가 숨어 있는지 몰랐으나 추적하는 개들은 오직 후각에 의존하고 있었다. 시각보다 <br>
후각이 더 정확했기 때문이었다.<br>
정오께 개들이 짖고 있었다. 개들은 추적을 멈추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멧돼지의 발자국이<br>
었다.<br>
"이런 젠장."<br>
서 영감이 아쉬워했으나 멧돼지 사냥따위를 할 수 없었다.<br>
"안돼."<br>
윤포수는 멧돼지 발자국을 추적하려던 백두를 제지했다. 백두는 끙끙거렸으나 멧돼지 사냥을 포<br>
기했다. 윤포수는 다음에 발견한 곰도 포기했다. 겨울 잠자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어린 곰이었으<br>
나 윤포수는 마다했다.<br>
 불범을 잡아야만 했다. 미순이를 잡아먹은 식인 범을 잡아야만 했다. 긴 머리카락에 덮혀있던 <br>
미순이의 머리가 윤포수의 뇌리에 박혀 있었다. 목서부터 절단된 처녀의 머리였다. 그 원한을 <br>
풀어주어야만 했다. 그게 윤포수의 집념이었다.<br>
"불범은 멀리 도망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br>
그날 야영을 하고 있을 때 서영감이 말했다. 언제나 그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br>
불범은 그 일대를 사냥터로 삼고 있었다. 마을에 가까운 그곳은 범의 영토 밖이었다. 범은 그런 <br>
곳까지<br>
 내려오지 않았으므로 불범은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곳에는 불범의 사냥감이 많았다. <br>
멧돼지 노루 따위가 돌아다니고 있었고 또 다른 사냥감도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사냥할 <br>
수 있는 인간이 있었다. 한번 사람을 사냥한 짐승은 그게 버릇이 되고 만다.<br>
사냥꾼들은 모닥불 옆에서 편안하게 잠을 잤다. 개들이 옆에 있는 한 사냥꾼들은 밤짐승들을 두<br>
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야영장 주위를 조사해 보니까 늑대들의 발자국들이었다. 열 <br>
마리 가까이 되는 무리들이었으나 개들이 지키고 있는 야영장을 감히 습격 하지는 못했다.<br>
정오에 개들이 또 짖었다. 멧돼지나 곰을 발견했을 때와는 다른 목소리였다. 몹시 긴장했고 살<br>
기가 느껴지는 소리였다.<br>
"불범이야."<br>
윤포수는 그 소리만으로 개들이 어떤 짐승을 발견한지 짐작했다. 그건 강적에 대한 시위였다. <br>
불안과 두려움을 뿌리치고 한 판 싸움을 벌리겠다는 선전포고였다. 그게 풍산개였다.<br>
발자국을 발견한 서영감도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아무말을 하지 않고 머리를 끄덕였다. 이번엔 <br>
발자국이 뚜렷하게 찍혀 있었다. 얼핏보면 범의 것이라고 보여질 정도로 큰 발자국이었으나 불<br>
범의 것임이 분명했다.<br>
만주불범이었다. 범도 조선범과 만주범이 다르듯 불범도 남쪽에 사는 불범과 북쪽에 사는 불범<br>
은 달랐다. 북쪽에 사는 불범은 덩치가 더 컸고 털이 길었다. 그리고 힘도 세고 성미도 거칠었<br>
다.<br>
개들의 눈빛이 달랐다. 살륙의 본능이 이글거리는 야수의 눈빛이었다.<br>
윤포수는 주위를 빙빙돌면서 주인을 보고 있는 개들을 불렀다. 윤포수는 백두의 상체를 안아준 <br>
다음 앞으로 밀었다.<br>
"가, 가서 잡어."<br>
이젠 사냥의 목표가 확정되었다. 개들은 우렁차게 짖으면서 윤포수가 손가락질한 방향으로 달려 <br>
갔다<br>
. 불범의 발자국이 이어지고 있는 방향이었다.<br>
개들은 힘차게 짖었다. 산이 떠나가도록 합창을 하고 있었다. 적을 쫓을 때 그렇게 짖는 짐승은 <br>
개들뿐이었다. 이리 늑대 들개 등 개과 동물들 중에서 개처럼 짖는 짐승은 없었다. 개들이 짖는 <br>
것은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부터였으며 사람들과의 공생에 적응한 일종의 진화였다.<br>
개들이 짖는 이유는 첫째로 사람들과 신호를 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리기도 하<br>
고 자기의 소재나 적의 소재를 알려주기도 한다. 개들은 그렇게 짖으면서 자기들끼리의 신호도 <br>
하면서 단결을 굳건히 하고 서로를 고무시키기도 한다.<br>
또 다른 이유는 적을 위협하는 데 있다. 끝까지 추격하겠다는 무리의 힘을 과시하며 적의 기를 <br>
죽이려고 했다. 그건 자신감의 표시였다.<br>
불범은 도망가고 있었다. 본디 불범은 개고기를 좋아했으며 즐겨 개사냥을 했다. 범이나 표범이 <br>
돌아다니는 산골 마을에서는 개를 사육하지 않았는데 그건 개가 불범의 밥이 되  때문이었다.<br>
그러나 사냥개가 표범사냥을 할 때는 그들의 관계는 달랐다. 그들의 관계는 역전된다. 사냥개는 <br>
표범을 잡으려고 했고 표범은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갔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관계였으며 표<br>
범은 쫓기는 것의 약점을 들어낸다.<br>
그 불범도 그랬다. 불범은 힘차게 짖으면서 추격해오는 개들과 맞상대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br>
개들의 뒤에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불범은 빠른 걸음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숲속<br>
에 잠복했다가 기습을 하는 따위는 개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개는 자기들보다 더 예민한 코를 <br>
갖고있었다.<br>
불범은 단숨에 10리(4 ) 쯤을 도망가 추격하는 개들을 떼 놓으려고 했으나 개들은 계속 추격했<br>
다. 일단 추격하기 시작한 적을 끝까지 집요하게 추격하는 것은 개 종류 짐승의 공통점이었다. <br>
불범은 개보다 빨랐으나 개에게는 지구력이 있었<br>
다. 불범은 단거리는 잘 달렸으나 전속력으로 달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단숨에 10리를 달리<br>
고 쉬고 있던 불범은 개들이 집요하게 추격해오는 것을 보고 다시 도망가고 있었다.<br>
윤포수는 그러한 상황을 알고 있었다. 불범사냥은 다리로 하는 것이었고 끈기로 하는 것이었다. <br>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끈기의 싸움이었다. 불범은 함경산맥을 타고 서쪽 개마고원을 향해 도망<br>
가고 있었다. 북쪽 삼림쪽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유리한 싸움터를 확보하려는 속셈인 것 같<br>
았다. 지형이 고르지 못하고 단풍진 숲들과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있는 지역이 개들과 싸우는 데 <br>
유리했다.<br>
불범과 개들이 그렇게 쫓고 쫓기면서 백리 가까이나 달리고 있을 때 날이 어두워졌다. 윤포수와 <br>
서영감은 야영준비를 했다.<br>
개들을 일부로 불러올 필요는 없었다. 개들은 날이 어두워지면 으레 추격을 멈추고 돌아오기 마<br>
련이다. 사냥꾼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밥을 짓고 있을 때 정말 개들은 돌아왔다. 윤 포수는 멧<br>
돼지 뒷다리를 개들에게 던져 주었다. 윤 포수는 "사냥개는 굶겨야 사냥을 잘 한다"는 말따위는 <br>
믿지 않았다. 오히려 사냥개는 충분히 먹여야만 잘 뛸 수 있다고 믿었다. 표범과의 싸움은 장기<br>
전이 될 것이기에 개들은 체력을 유지해야만 했다. 쫓기는 표범은 사냥을 못해 굶을 수 밖에 없<br>
었다.<br>
사냥꾼들도 구운 멧돼지 고기를 안주로 소주를 몇 잔 주고 받았다. 그리곤 고추와 마늘이 박혀 <br>
있는 된장을 반찬으로 저녁밥을 먹었다. 하늘에 커다란 달이 걸려 있었다. 늦가을의 밤엔 벌써 <br>
겨울의 냉기가 느껴졌다.<br>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사냥꾼들은 모닥불 옆에서 눈을 감았다. 개들이 옆에 있어 야수들을 걱<br>
정할 필요가 없었다. 서 영감은 이렇게 사냥을 하는 윤 포수가 좋았다. 그는 즐기며 사냥을 하<br>
는 편이었으며 억척스레 짐승만을 쫓는 직업포수는 아니었다. 윤 포수는 다음날 아침 개짖는 소<br>
리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br>
개들은 주인의 지시를 받지 않고 추적을 시작하고 있었다. 햇볕이 좋아 밤이슬에 젖은 풀들과 <br>
촉촉한 땅들이 하얀 김을 내면서 마르고 있었다. 땅위에는 불범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어젯<br>
밤에 찍힌 발자국 같았는데 한 곳을 빙빙 돌고 있었다.<br>
불범은 신경질이 나 있었다. 늘 다른 짐승들을 사냥했던 놈이 거꾸로 사냥을 당하고 있으니 화<br>
를 낼만도 했다.<br>
"이놈은 오래 도망갈 놈은 아닙니다."<br>
서 영감의 말에 윤 포수도 머리를 끄덕였다. 범의 발자국으로 오인될 정도로 큰 발을 갖고 있는 <br>
놈이었으므로 언제까지나 개들에게 쫓길 놈이 아니었다.<br>
개들도 조심했다. 개들은 덮어놓고 추격을 하지 않았다. 개들은 뒤따라오는 사냥꾼들과 일정한 <br>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불범이 반격을 해올 경우 사람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거리였다.<br>
그날 오후 불범이 반격을 시도했다. 불범은 바위산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개들을 덮치려 했지<br>
만 개들은 그 거리를 주지 않았다. 불범이 되돌아서자 개들도 추격을 멈췄다. 개들은 요란스럽<br>
게 짖으며 사냥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백보(75m) 거리를 두고 불범과 개들은 대치를 하고 있<br>
었는데 불범은 개들을 덮칠 기회를 이미 놓쳤다. 사냥꾼들이 빠른 걸음으로 달려오고 있었기 때<br>
문이었다.<br>
불범은 몸을 돌려 바위산을 넘어갔고 개들은 다시 추격을 했다. 불범과 개들의 술래잡기는 그날<br>
도 계속되었다. 윤포수는 그날 불범을 추격하면서 노루를 한 마리 잡았다. 다른 사냥꾼들은 큰 <br>
사냥을 할 때는 작은 사냥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었으나 윤포수는 그런 말들을 무시했다. <br>
그런 말이 나온 이유는 작은 사냥을 하려고 총을 쏘면 그 총소리를 듣고 큰 사냥감이 도망가기 <br>
때문이었으나 그 때는 불범은 이미 자기가 추격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br>
윤포수는 도망가는 불범에게 겁을 주어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 <br>
생각이었다. 노루를 잡아 개들에게 충분한 먹이를 줄 필요도 있었다.사람들과 개들은 그날 밤에 <br>
연한 노루 고기를 배불리 먹었다.그러나 도망가는 불범은 굶주리고 있었다. 그게 쫓기는 자의 <br>
처지였다.<br>
추격 사흘째 갑자기 일기가 돌변하여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겨울을 예고하는 바람이었으며 <br>
활엽수 나무들에 남아있던 잎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br>
개들은 건재했다. 무산의 산에서 자라난 그 개들은 추위에 강했다. 개들은 계속 우렁차게 짖으<br>
면서 추격을 했다. 불범은 개들이 쉬고 있던 밤에도 멀리 도망가지 못했다. 불범은 어느 산허리<br>
에 있던 잡목림에 머물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초췌한 모습이었다. 이제 사냥은 끝이 난 것 같<br>
았다. 배가 고프고 굶주리고 피로한 불범은 마지막 한 판을 벌일 것 같았다.<br>
영리한 사냥개들은 그걸 알아차렸다. 개들은 사람들과의 거리가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천천히 <br>
싸움터로 가고 있었다. 불범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악에 받쳐 독기가 서리어 있었다.<br>
불범이 버티고 있는 잡목림에는 나무잎들이 강한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개들은 불범의 앞뒤에<br>
서 협공을 했다. 윤포수의 개들은 역시 훌륭한 사냥개들이었다. 그들은 동시에 공격을 했다. 상<br>
대는 살육을 전문으로 하는 불범이었다. 민첩한 몸놀림과 칼날같은 이빨, 갈고리 같은 발톱 그 <br>
어느 점에서도 불범은 개보다 강한 짐승이었다. 1대 1의 싸움에서는 개들에게는 승산이 없었다.<br>
그래서 개들은 무리동물의 장점을 살린 긴밀한 협동작전을 펴고 있었다. 개들은 마치 아가리가 <br>
두 개 있고 다리가 여덟개나 있는 한 마리의 동물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여덟 개의 발은 적의 <br>
앞뒤를 동시에 공격했고 두 개의 아가리는 적의 어깨와 엉덩이를 동시에 물었다.<br>
불범은 도약했다. 협공을 하는 개들 사이에서 불범의 몸이 공중으로 날아 오르고 있었다. 고양<br>
이족 짐승들만이 갖고 있는 부드러운 몸<br>
놀림이었다. 불범은 그냥 개들의 공격을 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불범의 앞발이 개들을 후려<br>
치고 있었다. 그 발톱은 개들에게는 없는 무기였다.<br>
개들도 불범도 함께 피를 흘리고 있었다. 두목 개 백두의 하얀 털이 벌겋게 물들었다. 범의 발<br>
톱에 찍힌 어깨는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불범이 개를 죽이기 위해선 앞발로 <br>
짓누르면서 목줄을 깊이 물어뜯어야만 했는데 두목개와 함께 덤벼드는 암캐가 틈을 주지 않았<br>
다.<br>
암캐는 불범의 뒷다리를 물고 늘어졌고 불범은 그때문에 몸의 중심을 잃고 말았다. 분노한 불범<br>
이 몸을 돌려 암캐를 잡으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두목개가 목덜미를 물었다. 목덜미가 찢겨 불범<br>
도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불범과 개들은 그래도 한 덩어리가 되어 뒹글었다. 피가 흐르면 흐<br>
를수록 그들의 투쟁본능이 불탔다<br>
윤포수는 계곡에서 싸움터인 산허리를 향해 뛰어 올라가며 총을 발사했다. 공포였다. 울려퍼지<br>
는 총소리는 개들의 사기를 올렸고 반대로 표범의 기세를 꺽었다.<br>
그 때쯤 개들도 불범도 모두 지쳤다. 하지만 불범이 더욱 힘들어 했다. 다른 짐승들을 잡아먹으<br>
면서 사는 육식동물은 적을 공격할 때 온 힘을 집중시켜 결정적인 타격을 주려한다. 그 때문에 <br>
집중력은 오래 가지 않는다. 한꺼번에 힘을 쏟아버리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하면 초식동물이나 <br>
잡식동물에게는 지구력이 있었다. 특히 개들은 대단하다. 심장이 튼튼해 싸움을 오래 끌고가 적<br>
을 지치게 만든 다음 결정타를 가하는 식이었다.<br>
불범의 도약력이 약해졌다. 불범은 더 이상 뛰어다니며 적을 공격하지 못했다. 지친 불범은 개<br>
들을 뿌리치고 도망가려 했지만 개들이 놓아주지 않았다. 불범은 분노와 고통에 못이겨 고함을 <br>
질렀다. 그때 윤 포수가 싸움판에 도착했다. 개들은 윤 포수가 총을 들어올리자 범을 놓아두고 <br>
몸을 피했다. 윤 포수에게 사격의 기회를 준 것이었다.<br>
윤 <br>
포수와 오래도록 사냥을 함께 했던 개들은 사람과 어떻게 협동하며 싸우는지를 알고 있었다. 개<br>
들이 떨어져 나가자 불범도 도망갔다. 윤 포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침착하게 겨냥해 총을 <br>
발사했다. 불범이 뒹굴었다. 산탄총이었으나 탄에 약한 불범은 치명상을 입은 것 같았다. 개들<br>
이 쓰러진 불범에 돌진했으나 윤 포수가 제지했다.<br>
"안돼!"<br>
윤 포수의 고함소리에 개들은 쓰러진 불범에게 덤벼들지 않았다. 개들은 비록 치명상은 아니더<br>
라도 여기저기 상처를 입었다. 불범의 발톱에는 많은 균이 있었는데 그냥두면 생명이 위험할 정<br>
도였다. 윤 포수는 품에서 약을 꺼내 개들의 상처부터 돌봤다.<br>
약이 독해 심한 자극을 주었으나 개들은 얌전하게 주인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주인이 자기들<br>
에게 해로운 짓을 하지 않는다는 신뢰감 때문이었다.  그 동안 서 영감은 죽은 불범의 시체를 <br>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었다. 피가 스며나오는 총탄 구멍을 막고 몸에 묻어 있던 피를 말끔히 닦<br>
아주었다. 끝까지 싸우다가 죽은 투사에 대한 예우인 것 같았다. 불범의 목덜미와 엉덩이가 찢<br>
겨져 있었으나 짐승 껍질을 잘 다루는 박 영감에게 맡기면 감쪽같이 꿰매질 것이었다.<br>
사냥은 끝났으나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사냥꾼들은 그날 밤 불범의 시체를 마을로 메고 갔<br>
다. 마을이 발칵 뒤집어졌다. 온 마을 사람들이 촌장집 앞마당에 갖다 놓은 불범의 시체를 구경<br>
하고 있었다. 경찰지서에서도 순경이 나와 있었다.<br>
불범은 늙은 수컷이었으며 몸무게가 20관(80 )이나 되었다. 범으로 오인 될 만한 불범이었다. <br>
서 영감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범의 배를 갈랐다. 끈질긴 추격을 당했던 불범의 오그라진 <br>
위에서 금이빨과 단추가 나왔다. 금이빨을 보고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그건 살인 강도로 수배<br>
되어 있던 사나이의 것이었다. 그 사나이는 뒤쫓는 형사들을 피해 산으로 도망갔다는 말이었다. <br>
경찰은 그 사나이가 국경<br>
을 넘어 만주로 도망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불범에게 잡아먹힌 것이 분명했다.<br>
단추는 죽은 미순이의 내복에 달려있던 것이었다. 그 내복을 딸에게 사다 준 미순이의 모친이 <br>
그걸 확실하게 증명했다. 늙은 불범은 상습적으로 사람을 잡아먹은 것 같았다. 그해 봄나물을 <br>
캐려고 산에 올라갔다가 행방불명된 이웃마을 쳐녀도 그 놈에게 잡아먹힌 것 같았고 역시 행방<br>
불명된 무산읍의 약초꾼도 그랬던 것 같았다.<br>
몽달귀신이 미순이를 죽였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당황하고 있었다.<br>
"이래도 몽달귀신의 소행이라고 우기겠는가."<br>
촌장이 그들을 꾸짖자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당은 그래도 할말이 있었다. 무당은 몰<br>
려간 사람들에게 되려 고함을 질렀다.<br>
"그 불범은 몽달귀신이 둔갑한 것이야. 그것도 몰라? 내가 사흘 동안이나 굿판을 벌려 산신령님<br>
에게 몽달귀신을 응징해 주십사하고 기도를 드린것도 몰라? 그래서 산신령님이 몽달귀신을 응징<br>
하신거야. 몽달귀신을 잡은건 저 포수가 아니라 나라는 것도 몰라? 내가 산신령님에게 호소를 <br>
하여 그렇게 만들었지."<br>
무당은 그렇게 뇌깔였으나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미순이의 부친과 몽달귀신이 됐다는 총각의 <br>
형이 "네 이년"하면서 무당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무당의 젊은 서방도 마을사람들에게 붙잡<br>
혀 몰매를 맞았다.<br>
무당과 그 젊은 서방은 마을에서 추방되었다.  끝.<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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