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문학

일본 소설

3856 2008. 9. 7. 16:01

진화하는 일본 소설
기사입력 2007-03-08 09:39

최종수정2007-03-08 09:39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 소설의 과열 현상에 대한 논의가 거듭됐지만 파장이 줄어들기는커녕 해를 거듭하며 문화적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여러 지표들이 이런 현상을 확인해준다. <출판연감>에 따르면 1997년 143종에 불과했던 일본 소설은 2004년을 정점으로 크게 늘어 2006년에는 580권이 출간됐다. 교보문고의 연도별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도 일본 소설의 증가세를 확인할 수 있다. 2000년도만 해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우동 한 그릇>, 그리고 동명의 영화가 소개된 <철도원>이 종합 200위 안에 턱걸이를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2003년 <냉정과 열정사이>를 기점으로 현대 일본 소설은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급기야 2005~06년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에쿠니 가오리는 물론이고 오쿠다 히데오와 가네시로 가즈키까지 일본 소설의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제 국내 소설의 상대적 침체 현상과 비교돼 일본 소설을 이야기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일본 소설은 장르가 확산됨은 물론이고 과열 현상을 걱정해야 할 만큼 다양한 양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국내 소설 침체와 달리 과열 현상까지

<냉정과 열정사이>가 80만 부 이상, <공중그네>가 30만 부 이상 팔리며 대중성이 확인되자 출판사들이 너도나도 일본 소설에 뛰어들고 있다. 순문학과 대중문학을 넘나들며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전할 줄 아는 특유의 정서가 국내 독자에게 어필하자 일본 소설의 출간은 양적으로 크게 늘었다. 따라서 저작권 로열티 금액도 폭등했다. 1~2년 사이에 일본 소설은 과열 경쟁을 거치며 로열티 금액이 통상적인 수준보다 10배 정도 높아져 버렸다는 후문이다. 특히 유머와 재미를 담보해 국내에서 반응이 좋은 나오키상 수상작들은 부르는 게 값이다. 나오키 수상작은 500만 엔(5000만 원)부터 계약된다는 소문인데, 최근 나오키상을 수상한 미우라 시온의 <마호로역 앞 다다심부름센터>도 이 정도의 로열티를 지급했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 일본 소설 전문 편집자나 마케팅 담당자의 몸값까지 높아지고 있을 정도로 과열 현상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일본 소설은 양적인 증가와 함께 영역의 확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 소개된 일본 소설은 지금까지 크게 세 가지 유형이었다. 첫 번째는 에쿠니 가오리로 대표되는 연애소설이다. 두 번째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레벌루션 No.3> 혹은 요시다 슈이치의 <퍼레이드> <일요일들> 등처럼 20대 화자를 내세운 청춘(연애)소설이 있다. 세 번째는 학원만화나 영화가 강세인 일본의 특성상 빼놓을 수 없는 일본의 10대 소설이다. 이시다 이라의 <4teen>이나 쓰지 히토나리의 <사랑을 주세요>, 와타야 리샤의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시게마츠 기요시의 <안녕 기요사코>처럼 오늘의 10대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들이다.

일류의 견인차 역할을 한 일본의 연애소설, 청춘소설, 10대 소설이란 순문학적 전통에 사로잡혀 국내 작가들이 시도하지 않은 영역들, 다시 말해 국내 작가들이 채워주지 못하지만 독자의 필요가 존재하는 빈자리를 적절하게 채워주며 최고의 읽을거리로 자리 잡게 된 측면이 크다.

그런데 2006년을 기점으로 국내에서는 독자층이 미미한 마이너 장르의 일본 소설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다. 나오키상 수상작이나 에쿠니 가오리의 연애 소설들이 베스트셀러를 점령한 가운데 다양한 장르의 일본 소설까지 국내에 소개되고 있는 중이다.

전 세계 3억 독자가 열광했다는 스티븐 킹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할 정도로 국내 시장에서 미스터리 장르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스티븐 킹조차 국내에서는 불쾌하고 저급한 호러 작가일 뿐이며, 소수의 마니아 독자들과 여름 시장 특수에 기대어 고작 2000~3000부 정도가 판매될 뿐이다. 하지만 2006년 선보인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전3권)은 3만 부 이상 판매됐으니 우리 출판 시장의 정서나 전통에 비해 얼마나 새로운 현상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이 기대 밖의 반응을 얻자 미야베 미유키만 해도 <모방범>은 물론이고 <용은 잠들다> <스텝파더 스텝> 등이 연속적으로 소개됐으며 온다 리쿠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 타고>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호숫가의 살인사건>, <용의자 X의 헌신> 등도 출간되고 있다.

2차 상품인 캐릭터 소설도 인기

또 하나 라이트 노벨 혹은 캐릭터 소설이라고 부르는 주니어 소설까지 이 대열에 합세했다.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 달에 수십 종씩 간행되는 게임이나 만화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로 일본에서는 ‘스니커문고’ 시리즈가, 국내에서는 ‘NT novel’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2006년 국내에서 인기를 끈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는 스니커 대상(스니커 문고에서 수여하는 라이트 노벨 분야의 상이다. 우리로 치면 인터넷 소설에 수여하는 상이다)을 받은 라이트 노벨이다.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은 또 어떤가. 만화에 별 관심이 없던 30~40대 직장인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끌며 전통적인 일본 만화의 독자 연령층을 확대했다.

약간의 편차가 있지만 국내에 소개된 일본 소설의 주요한 독자는 20~30대 여성이었다. 물론 상처 입은 삶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바나나가 10대와 20대 여성 독자들의 지지를 받는다면 열정적이고 거침없는 야마다 에이미는 20~30대 독자들에게, 사랑에 빠진 마음을 감각적이고 감성적으로 그려낸 에쿠니 가오리는 20~40대에게 하는 식으로 독자층이 나눠지기는 한다. 하지만 중심은 20~30대 여성이었다.

당연히 출판사들은 일본 소설을 마케팅할 때 철저하게 20대 여성을 중심에 둔다. 대표적 현상이 책의 패키징이다. 2003년 국내에 소개된 요시다 슈이치의 <퍼레이드>는 소설책의 외형이 일반적인 신국판 크기에 무선철이었다. 작품은 호평 받았지만 판매가 부진하자 2005년에 개정판을 펴냈다. 20대 여성 독자를 주 타깃으로 정하고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표지를 바꾸고 손에 잡히는 팬시한 사이즈의 양장본으로 다시 책을 출간했다. 결과는 성공적으로 뒤늦게 5만 부 이상이 팔렸다.

비슷한 사례는 많다. 2000년에 출간됐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빵가게 재습격> 역시 2004년에 양장본으로 다시 펴내면서 판매 부수가 급증했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역시 신작 의 출간과 맞춰 언뜻 만화책처럼 보일만큼 단순하지만 명료한 일러스트로 표지를 바꾸고 손에 잡히는 양장본으로 새롭게 출시했다. 재출간되며 2006년 한 해만 는 5만 부, <플라이 대디 플라이>는 14만 부가 팔려나갔다.

하지만 대형 서점의 일본 소설 코너를 가보면 알 수 있지만 독자층은 20~30대보다 훨씬 아래로 내려가 있다. 최종태 감독이 동명의 일본소설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이문식 이준기를 주연으로 영화화한다고 발표하며 <왕의 남자>의 히어로 이준기를 좋아하는 10대 여학생들이 앞 다퉈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도 독자 연령이 확대된 원인 중 하나로 손꼽힌다.

여기에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을 소설화한 2차 상품에 해당하는 캐릭터 소설까지 합세하며 본격적인 10대 독자가 창출되고 있다. 캐릭터 소설은 사실주의가 주류를 이룬 근대소설과 노선을 완전히 달리하는 장르로 문장보다는 인물 창조에 큰 비중을 두며 현실이 아닌 가공의 세계를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판타지 소설에 익숙한 10대에게는 안성맞춤인 장르다. 21만 부 이상 팔려나간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로 대표되는 캐릭터 소설의 독자는 초등학교 4~5학년부터 시작된다.

일본 소설의 인기를 견인하는 또 하나의 무기는 영화 혹은 드라마의 인기다. 2000년 국내에 소개된 <냉정과 열정사이>나 2005년 출간된 <도쿄 타워>의 인기는 모두 동명의 영화로부터 시작됐다. 제3회 서점 대상 수상작인 릴리 프랭키의 <도쿄 타워-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는 2007년 봄, 오다기리 조 주연으로 영화화될 예정으로 벌써부터 주목받고 있다.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bangku@dreamwiz.com